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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수필 & 긴글129

긴 침묵에서 깨어나 긴 침묵에서 깨어나 서랍 속 오래된 손목시계의 태엽을 감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착착착 소리를 내며 바늘이 돌아간다. 이 시계는 수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잠시 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듯 태연히 일을 시작한다. 마치 낮잠을 한숨 자고 난 후 그동안에 마른 빨래를 앞으로 당겨 하나하나 가지런히 개고 있는 중년 여인네 같다. 이 시계는 그동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꽃피고 비 오고 단풍 들고 눈 내리는 수많은 시간의 반복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태엽이 오랜 시간, 수 십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한 번에 연결시켜 주어 버렸다. 어느 봄날 떨리는 손으로 나의 손목에 채워주던 아내는 어느덧 중년을 지나 머리에 은빛이 검은 빛보다 많고 나의 성긴 머리카락 속으로는 바람이 술술 지.. 2021. 1. 27.
자동차를 바꾸며(쓰는 중) 자동차를 바꾸며 욕심이 많은 것일까요. 오늘 승용차를 새로 계약하고 나서 차종 선택과 관련하여 잠깐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명예욕 같은 것은 가지고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시욕과는 다르며 흔히 생각하게 되는 물적 욕심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지요. 정당한 사회적 대우, 체면 같은 것에도 민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또 사업을 시도했던 것도 돈 보다가는 이러한 이유가 많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 할 수가 없군요. 직장 생활은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상당히 능력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러나 그에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 2020. 10. 30.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을 대화하다(2010.1. 여행일기)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을 이야기하다.(2010. 1월, 겨울) 선생님 안녕하세요? 몇 년 전, 그러니까……. 이 기념관이 없을 때 들렸었으니까……. 상당히 오래전인 것도 같고, 그동안 주변을 지나쳐 가기도 하고 강원도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한 번씩 짚어 보았으니 느낌상으로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어떻든 선생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너무나 익숙하고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소설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저 멀리 펼쳐 진,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은 메밀밭인 듯한 언덕과 들을 보았습니다. 메밀꽃이 막 피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야말로 달빛에 온통 소금을 뿌린 듯 눈이 부시겠군요. 어스름한 달빛에 대화 장터을 향해 하얀 메밀밭 길을 걷고 있는 장돌뱅이 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짐.. 2020. 10. 17.
여행, 그냥 떠나라! 여행, 그냥 떠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한다. 내 주위에 여행을 각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시로 여행을 다니는 듯하다. 처음에는 여행 작가나 여행 가이더 등 관련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도 가방을 메고 나간다. 어디를 그렇게 자주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늘 ‘한참 만에 처음이란다.’ ‘한참 만에 처음?’ 그분의 표현이 그렇다. 하기는 매번 새로운 느낌이니 늘 처음이라는 것도 이해는 간다. 사실 여행은 항상 새롭다. 기간을 막론하고 다녀온 곳도 다시 가보면 또 새로운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느냐? 는 우문도 없는 듯하다. 떠나면 다 여행지이지. 막연히 쉬는 날이면 어디를 가 볼까 고민하는 경우가 .. 2020. 5. 15.
손으로 쓰는 편지 손으로 쓰는 편지 가끔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컴퓨터 워드로 뚝딱거려 쓰는 편지가 아닌 손으로 정성을 담아 차분하게 쓰는 편지 말이다. 손으로 쓰더라도 볼펜이나 손쉬운 필기도구가 아닌 펜이나 만년필로 썼으면 한다. 만년필로 쓴다면 새것이 아닌 오래되어 낡은 것이었으면 더 좋겠다. 적당한 편지지에 손에 익숙한 펜으로 한 단어, 한 문장에 신중을 기하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어 써 내려갈 때 순간의 진실 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고 운치도, 성취도 있을 것이다. 손으로 쓰는 글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잘 못 쓰거나 잉크라도 떨어뜨리는 날이면 낭패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그러니 신중한 글이 되고 사연도 깊어지게 된다. 어떤 때는 매끄럽지 못한 글이 되기도 하겠지만 다시 쓰기가 쉽지 않으니.. 2020. 5. 10.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야만 할까?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야만 할까?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거나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제대로된 창작 공부는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그냥 일상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코 잘 쓴 글은 아닐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생각은 있으되 그만큼 읽지는 않고 있으니 이는 내 일생의 아쉬움이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틈틈이 일기처럼 글을 쓴다. 틈틈이 사진도 찍는다. 제대로 된 사진장비를 가지고 찍는 것은 아니다. 십수 년 전에는 조그마한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찍다가 최근에는 핸드폰으로 찍는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과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관련이 있다. 사진을 찍다가 보면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을 기록한다. 이것은 또한 내 취.. 2020. 4. 8.
빼앗긴 들 에도 봄은 오는가 / 김탁기 빼앗긴 들 에도 봄은 오는가 / 김탁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승으로 모두가 무력감에 지치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오고 있다. 바이러스로 빼앗긴 우리들의 마음에도 피어나는 봄과 함께 모든 희망과 평상심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 마을의 봄은 아름답다. 우리 강산에 봄이 아름답지 않는 곳이 있으랴마는 우리 마을은 도회 가운데, 그것도 아주 번잡한 도심 속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로 녹지가 풍부하여 가까이에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엊그제 아침에 보니 이미 산수유가 피고 목련과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의 탐스러운 모습이었으며 잔디와 수목에 푸르스름하게 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목련과 개나.. 2020. 3. 23.
잊지 못할 복숭아 서리 복숭아 서리 중학교 1~2학년 여름방학 때 즈음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동구에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거나, 바위를 건너뛰거나, 땅따먹기를 하며 놀고는 했다. 거의 아침에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배가 고프면 그때 집으로 들어가 대충 허겁지겁 먹고 다시 나오고는 한다. 동구는 우리 동네 어귀로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집채만 한 바위와 넓지는 않지만 암반 위로 흐르는 시내가 있는 곳이다. 여기는 우리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피서지이다. 여름이면 애들은 시내를 막아 물웅덩이를 만들어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느티나무 밑 큰 바위 위에서 큰 대자로 누워 점심 후의 오수를 즐긴다. 그날도 물장구를 치고 자맥질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으니 지치기도 했고, 물놀이를 하다가 보니 춥기도 하여 냇가.. 2020. 3. 10.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 김탁기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항상 향기가 난다. 결코 꾸미지 않은 부드러운 표정에 옅은 미소로 차분하게 나누는 말씨에서 인품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유쾌한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막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깊은 인품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사람에게서는 이런 향기가 나야 한다. 결코 인공의 향수 냄새가 아닌 고운 심성을 바탕으로 깊은 지성에서 나오는 인품의 향기 말이다. 향기에는 종류가 있다. 우선 자연에서의 향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에는 숲의 향기를 들 수 있다. 숲 속에 들어서면 코끝을 스치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소나무 과의 침엽수림에서 느끼는 진한 피톤치드의 향기는 심신을 안정.. 2020.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