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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야만 할까?

by 탁구씨 2020. 4. 8.

글은 책으로 출판되어야만 할까?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거나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제대로된 창작 공부는 근처에 가본 적도  없다. 그냥 일상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코 잘 쓴 글은 아닐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생각은 있으되 그만큼 읽지는 않고 있으니 이는 내 일생의 아쉬움이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틈틈이 일기처럼 글을 쓴다.

틈틈이 사진도 찍는다. 제대로 된 사진장비를 가지고 찍는 것은 아니다. 십수 년 전에는 조그마한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찍다가 최근에는 핸드폰으로 찍는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과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관련이 있다. 사진을 찍다가 보면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을 기록한다.

 

이것은 또한 내 취미가 여행이라는 것과 관련이 깊다. 자연히 여행 중에는 언제나 그 나름의 느낌이 있고 그 이야기를 언제나 기록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는 즉시 사진을 정리하고 기록을 한다. 이를 ‘블로그’에 저장하고 나서야 여행이 마무리된다.

이는 내가 졸업당시 학생회장으로 거의 의무적으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던 동창회 카페에도 기인한다. 카페의 활성화를 위해서 뭔가를 올려야 했고 나는 수시로 글과 사진을 올렸다. 이 카페는 한 때 동창회 카페로 상당히 알려지기도 했다.

블로그나 카페에는 여행기록뿐만 아니라 틈틈이 쓰고 싶은 글이나 순간순간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수필이나 시 형태로 저장된다. 이제는 제법 그 글들이 천수백 개가 넘어서고 있다. 웬만한 책 열 권 정도는 되겠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책을 내어보라는 권유를 받아 왔다. 그냥 블로그에 올려놓기에는 아쉽지 않느냐? 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필, 시, 여행기로 분류하여 책을 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책을 내려고 쓴 글도 아니고 그럴만한 수준도 되지 않기에 그냥 지나쳐 듣고만 있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발달한 미디어 시대는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정말 수험용 전문 서적이나 특별한 이슈가 있는 책이 아니면 구태여 책으로 읽을 필요성도, 그만한 감성도, 여유도 없는 듯하다. 그 많던 잡지도 많이 폐간되었으며 심지어 신문도 발행 부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점에 가보면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는 있다. 넓은 매장을 수많은 책들로 메워져 있다. 특히 그중에는 일반 인문학 서적, 수필집, 시집 등이 많다. 쏟아지는 책의 양으로만 보면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빈 말인 듯도 하다.

그런데 매장에는 잘 알려진 몇몇 작가의 책을 제외하고는 수시로 새로운 책들로 바뀐다. 분명 요즘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 듯한데 그중 많은 책들이 일회성으로 진열되고 폐기되는 듯하다.

얼마 전에 동료직원이 누군가의 책을 기증받고 돌아서서 ‘요즘 책은 냄비 받침으로도 안 쓰는데…….’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전에는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뜨거운 냄비를 올려놓는 받침으로라도 썼는데 이제는 받침도 제대로 된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필요가 없어졌다는 웃지 못할 풍자이다.

 

  결국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자기 과시이며 자기만족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한 기념으로 친분 있는 몇 사람이나 관심 있는 몇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정도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그들도 읽어 줄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애써 출판한 책이 읽히지도 않은 채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주었는데 읽히지도 않은 채 버려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출판하는 것을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있다.

그런데 권유처럼 만일 기념으로 한두 권 내 본다면 우선은 수필집으로 내고 싶다.

여행 후기는 많이 쓰기는 했지만 출판하기에는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 주로 나의 주관적 느낌만을 감성적으로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시는 나의 역량으로는 아직은 부족하다. 편수도 아직은 많지 않다. 나는 글을 체계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어설픈 부분이 많다. 좀 더 쓰고 가다듬은 후에는 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현재로서는 수필집이 좋을 것 같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조금은 자유로워 부담이 덜 하다. 시처럼 기교가 있거나 화려하지 않고, 소설처럼 복잡, 방대하지도 않다. 평론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필요치 않고, 기사나 칼럼처럼 시사성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깊은 사색이나 심오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고급스러운 단어나 유려한 문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마치 산책을 하듯이 여유롭게 쓴다. 애써 잘 쓰려고 꾸미지 않은 솔직하고 단순한 글이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쓰는 글은 아니다. 가능한 보편적이어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진부하지 않아 신선함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진솔한 감동과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패기 발랄한 순수 문예 창작이라기 보다가는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후의 삶이 녹아있는 글, 인생의 깊이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냥 자기 수준에 맞게 쓰는 글이다. 일상을 손 가는 대로 쓴다는 것, 기교를 부리지 않고 욕심 없이, 살아온 과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이 내 적성에 맞다.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사람들의 글도 제대로 읽어보고 내가 쓴 글에 대한 평가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합문예지의 신인 작품상 모집에 응모했고 당선이 되었다. 천수백 편의 글을 쓰고 이제 신인상이라니 어색하기도 하다.

사실 작품상에 해당하는 글은 내가 보낸 몇 편 중 가장 신경을 쓰지 않은 글이었다. 손을 보지 않은 글이 당선이라니 오히려 이제는 써도 될 것 같다는 고무적인 생각도 든다.

내가 출판을 하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등단 상패에 '신인 작품상 수필 부문에 당선하셨기에 수필가로서 한국문단을 빛낼 활발한 활동을 기대한다.'라는 문장이 상투적일지라도 마음에 들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더 훗날 내 인생의 기록이라거나, 나이가 더 든 후 여가를 보내는 방법으로서라도, 일단은 부담 없이 계속 글은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자기만족이 될 수도 있겠다.(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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