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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은퇴8

몇 살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몇 살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별 빛이 차갑게 푸르고 플라타너스 잎이 바스락 거리는 날 중년을 넘어가는 동갑내기가 강가 버스 선술집에 동승하여 소주잔으로 투합했다 외환위기가 막 지나가고 있는 때 우리가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막 자영업에 뛰어들어 섬유업을 하는 P대표는 자조 섞인 말로 어렵겠지만 몇 년 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수기업에 다니는 K과장은 하루가 살얼음판이라 운신이 겁난다고 했다 대기업이긴 하지만 경기에 직격탄을 맞을 T과장은 아무런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홍합 국물은 뜨끈하지만 어둠 속으로 강은 적막하게 흐르고 소주는 쓰기만 하다 시대의 고뇌만이 공간을 꽉 채우고 그들은 오육년 더 할 수 있다는 것도 희망적인 기대라고 했다 강가의 인적도 점차 잦아들고 그들만이 남아 낡은 버스를 지킨다.. 2022. 11. 16.
5호선 검단산행 5호선 검단산행 5호선 검단산행 열차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검단산교校가 다가선다 전철이 생기면서 교복을 입고 스틱에 가방을 맨 학생들이 늘어났다 등교시간에 교복들이 하나 둘 내린다 학교는 365일 수업이다 종점 검단산역은 천천히 움직인다 넓은 대합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길게 목을 빼고 개찰구를 바라본다 오늘도 나오지 않는 누구, 주섬주섬 느릿느릿 산으로 향한다 전前 학교에서 삼십 수년을 졸업한 학생들은 시간을 배운다 검단산이 먼저 와 반갑게 기다린다 2022. 7. 13.
의자도 쉬고 싶을 듯 의자도 쉬고 싶을 듯 나무 밑에 저문 하늘을 안고 삐뚜름히 기대어 있지만 비에 젖은 낙엽들이 차고앉아 있지만 한 때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휴식이었고 뿌리이기도 열매이기도 어둠의 창가에서는 고뇌이기도 하였었지 임자가 따로 없다지만 물려받기도 쟁취하기도 하는 것이거늘 서산에 노을 짐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이제 당당히 그 할 일을 다 하고 공손히 비워준 흔적으로 남아있구나 의자도 쉬고 싶을 것 2022. 1. 22.
전원생활을 찾아 전원생활을 찾아 오래전 어느 때인가부터 은퇴하면 전원에서 밭 매고 책 읽으며 산천을 벗 삼아 살겠다고 곳곳을 찾아다녔지 평소에는 인터넷을 헤엄쳐 다니고 멀리 높은 산이 첩첩이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아래 들과 강이 있고 이웃이 좋은 포근한 곳을 만나고 싶었지 다닌 만큼 조건은 핑계같이 늘어만 가네 오늘도 햇빛 쨍쨍한 전원을 헤매다가 지쳐서 돌아오네 과연 전원생활을 해 볼 수 있으려나 문밖 나서면 강산이 다 전원인데 그냥 북한산을 뒷산으로 한강을 정원으로 테라스를 텃밭 삼아 전원을 살까 보다 2021. 7. 10.
새 교복 새 교복 오늘도 학교로 가는 K형 서른다섯 해 졸업 후 새 학교로, 아침에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오르는데 이 학교는 늘 자율 학습 처음에는 관찰하는 법을 공부하고 점차 인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식물도 많이 공부하여 두릅도 노루궁뎅이도 알지 채취한 것을 가족들이 무척 대견해하고 반겼는데 사실 언제부터는 구석에서 말라가는 것도 안다 K형도 비 오는 날이 좋다 선택은 좁고 생각은 골똘하다 내일은 또 어떤 교복을 입어야 하나 2021. 5. 27.
제 2막 제 2막 누가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지 않으리 묵묵히 흐르는 물에 발을 씻고 돌아서는 모습은 자랑스럽고 아름다울 것 그래서 노을은 저렇게 불타며 환송하리 누구에게 떠오르는 별이 찬란하지 않으리 별을 바라보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작과 설렘이 아름다울 것 그래서 은하수 저렇게 흐르며 환영하리 물드는 노을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며 별빛에 가슴 설렘이 없는 사람은 더 아프고 지독히 외로운 사람일 것이라 돌아서는 하늘 초연히 접어두고 강물 부드럽게 흐르며 풀무 아름답게 움직여야 하리 물불 다 태우고 저절로 흐르게 하여야 하리 2020. 8. 25.
정년(停年) 정년(停年) 하늘이 높은 창에 어린 거린다 게으른 새 긴 울음을 뱉고 날아간 하늘 할 일은 많은데 일 없는 느지막한 달력의 경계 밖에 서 있다 시간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려와 이쯤에 내 팽개치고 태연히 떠났다 때 지난 암소가 헤벌레 시간을 씹고 온통 적막이 팔짱을 끼는 표정 없는 자유이다 달력을 딛고 선 선택 자유의 메모 이제 배우가 아니라, 감독인가 2020. 8. 14.
은퇴(隱退)에 대한 단상(斷想)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隱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져야 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얼굴과 말과 행동에서 연륜에 따른 인품이 묻어나고, 다음 세대에게 이런 저런 조언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앞선 .. 2019.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