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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가는 길 (구, 탁구의 블로그 바우상상)

김탁기 수필집12

부활의 아침에 부활의 아침에 수목에 수액이 오르고 꽃들이 피어난다 바닥에는 청순한 새싹들이 나무에는 화사한 꽃으로 거듭난다 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지저귄다 이루지 못하거나 빗나간 화살 같던 순간 기억의 흔적들이 뱃속을 채우고 있다 마음 가운데 소화되지 않고 남아 그 흔적들이 단단한 돌덩이로 굳어있다 새 아침에 빛이 찬란히 부서지듯이 파도가 스스로 부서져서 새롭게 되듯이 마음속의 찌꺼기를 새롭게 다듬어 삶의 파편 기억의 흔적을 걷어내고 싶다 피어나는 봄의 새싹처럼 청초하게 눈 녹아 계곡처럼 정결하게 흐르고 싶다 인생에 군더더기는 아예 버리고 할 수 있는 것 만으로 가지런히 하고 싶다 봄날 가파르지 않은 언덕에 씨를 뿌리고 늘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2025. 4. 20.
저 언덕 너머에 저 언덕 너머에 언덕을 넘어 하늘과 땅 사이 해조음 아련한수평선이 떠오릅니다말도 없이 가버린날들이둥둥 수평선 위를 달려갑니다   진홍빛 천천히 짙어지고흘러가는 섬반짝이는 은빛 날개입니다 가까이 가더라도그 자리에 없을 것 같아그냥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냅니다   사랑이 와서 봄이 되고슬픔이 와서 여름이 되고 가슴 시려서 겨울이 되었습니다언제인가는 가보고 싶고그래서 가기 어렵고결국 갈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촛불 흔들려서 꽃이 피었습니다구름이 흐르고해가 저물어도, 그곳에 있고그곳에 없는 곳 노을 지는 붉은 바다 위에둥둥 꽃 한 송이 흔들려갑니다 2025. 2. 28.
기린의 추억 기린의 추억 나뭇가지에 봄이 아른 거리는 날서울 대공원엘 갔다동물들이 아직 봄을 맞지 못하여우리 속으로 들어가 있다목이 길어서 슬픈 기린이목을 길게 빼고 우리를 구경 한다아직 찬바람 속인데 찾아 온 무리들이 많구나 다시 고개를 돌려목을 더 길게 빼고 창밖을 본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문득 동그란 눈동자에 우수가 어리고 펼쳐지는 사막이 보인다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을 추억한다막막히 펼쳐지는 사막동무들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무리지어 달린다 미루나무가 흔들리고 버스가 달리고신작로에 먼지가 일어난다그 뒤를 달려 간다매캐한 연료 타는 냄새가 향기롭다나는 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추억하고기린은 먼지 날리는 사막을 추억한다우리는 기린을 구경하고기린은 우리를 구경한다나는 어릴 적으로 회귀하고 싶고기린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2025. 2. 27.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다행이다참말로 다행이다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릴 적에 홍시를 따러감나무엘 올라가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졌다그냥 엉덩이를 툴툴 털며 일어났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다치기는커녕 아프지도 말고 일어나라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심사숙고하여 시작했던 일이성공을 기대했으나 불가항력으로 접게 되었다다행이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바람은 차되 꿈틀거리는 아지랑이가 살갑다동토에 꽃 피기가 그리 쉽겠는가다행이다 눈 녹고 수목 두꺼워졌다   고마울 때 고마워하고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누구에게 못할 짓 하지 않아서 다행이고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힘들어도 아프지 않아 다행이고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어 다행이고 내 삶 이만큼 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2025. 2. 14.
오래되었다는 것 오래되었다는 것  오래되었다는 것이 모두 나쁘지도 모두 값어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정감이 있는 반면 불편이 따르기도 한다. 나는 유럽의 슬럼에서처럼 반세기 가까이 된 아파트에 수 십 년을 살고 있다. 유리가 얇아 쇠 바람이 들어오고 문짝이 삐걱거리고 녹물이 나오고 난방이 잘 안 되고 불편이 이만 저만 아니다. 혹한을 지내오면서 수도 계량기가 터진 집도 여러 집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냥 살기는 산다. 이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복잡한 준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오래되었다는 것이 골동품처럼 모두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그냥 산다.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면 사실 이 문제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익숙하다. .. 2025. 2. 12.
순천만 /김탁기 순천만 / 김탁기 마음이 어지럽거든순천만으로 가라가서 바람에 흐느끼는 푸른 파도가 돼라바람의 심장에 기대어 함께 넘어지고꿋꿋이 일어서라들판 가득히 크게 흔들려라가슴을 가득 채운 못다 한 말을마음껏 뱉어내고푸른 생명으로 가득 채워라사정없는 출렁임 속으로뛰어들어라 갯바람이 되어함께 흔들려라순천 동천의 갯물이 되어첨벙첨벙 서해의 너른 바다로 달려가라산들바람이 불거든두 팔을 벌려 너른 들판을 껴안고그 품속에서 잠들어라거친 바람이 불거든한 마리 솔개 되어 설산에 부딪혀라물결치는 순천만 갈대숲높은 하늘을둥둥 크게 떠 다녀라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거든순천만 갈대숲으로 가라병풍 같은 산줄기를 편안히 베고일렁이는 갈대밭에 크게 누워수평선의 울음을 들어라순천만 갯벌이 되어너그러운 바다의 노래를 들어라뻘게 짱뚱어가 되어갯벌.. 2024. 12. 2.
박주 한잔 / 김탁기 박주 한잔 / 김탁기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훈훈한 오뉴월 열기가 한가롭다어딘가로 떠나고 싶고누군가와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싶다 곰삭은 친구를 만나수령 깊은 나무 그늘 아래사방이 트인 오래된 사랑마루에서해묵은 이야기를 한가로이 나누고 싶다 소반에 박주인들 어떠리개다리소반 짠지 뼈다구에젓가락 두어 개 걸쳐 놓고하늘 동동 띄워 박주라도 한잔하고 싶다 무성한 녹음 사이로하얀 하늘이 쏟아지고어느 가게 앞 백구가 길게 하품을 하는세상이 졸고 있는 고요한 여름날 오후이다 (210711) 2024. 9. 8.
술술 써 놓았던 여행 기록을 사진과 함께.. 그동안 사진과 함께 써 놓았던 여행 기록을 책으로 엮어볼까..작년에 그동안 틈틈이 써온 글들을 원고 정리 차원에서 두권의 책으로 추가 출판했다. 주위에서는 오히려 여행 기록을 사진과 함께 출판해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여러가지 번고로운 일들로 포기했었는데 요즘 무더위가 조금씩 가라앚으면서 다시 이를 고민해본다. 여행안내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냥 여행지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사진과 함께 술술 풀어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여행 기록이 사진과 함께 방대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무엇보다 애착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다.인생에게 쓰는 러브레터 / 김탁기 수필집 (2023년)일상의 글을 수필집(2집)으로 엮어봤다. 2006~2019년까지 글 중에서 골랐.. 2024. 8. 29.
순천만 / 김탁기 순천만 / 김탁기 마음이 어지럽거든순천만으로 가라가서 바람에 흐느끼는 푸른 파도가 돼라바람의 심장에 기대어 함께 넘어지고꿋꿋이 일어서라들판 가득히 크게 흔들려라가슴을 가득 채운 못다 한 말을마음껏 뱉어내고푸른 생명으로 가득 채워라사정없는 출렁임 속으로뛰어들어라 갯바람이 되어함께 흔들려라순천 동천의 갯물이 되어첨벙첨벙 서해의 너른 바다로 달려가라산들바람이 불거든두 팔을 벌려 너른 들판을 껴안고그 품속에서 잠들어라거친 바람이 불거든한 마리 솔개 되어 설산에 부딪혀라물결치는 순천만 갈대숲높은 하늘을둥둥 크게 떠 다녀라 가슴이 답답한 날이 있거든순천만 갈대숲으로 가라병풍 같은 산줄기를 편안히 베고일렁이는 갈대밭에 크게 누워수평선의 울음을 들어라순천만 갯벌이 되어너그러운 바다의 노래를 들어라뻘게 짱뚱어가 되어갯벌.. 2024.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