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었다는 것
오래되었다는 것이 모두 나쁘지도 모두 값어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정감이 있는 반면 불편이 따르기도 한다. 나는 유럽의 슬럼에서처럼 반세기 가까이 된 아파트에 수 십 년을 살고 있다.
유리가 얇아 쇠 바람이 들어오고 문짝이 삐걱거리고 녹물이 나오고 난방이 잘 안 되고 불편이 이만 저만 아니다. 혹한을 지내오면서 수도 계량기가 터진 집도 여러 집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냥 살기는 산다. 이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복잡한 준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이 골동품처럼 모두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그냥 산다.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면 사실 이 문제는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익숙하다. 한 마을에 오래 살다 보면 다른 동네를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동네가 최고이다. 환경이고 교통이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리함과도 통한다. 시설은 불편하지만 주변 환경은 나에게 익숙해져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쉽게 찾을 수가 있으며 그동안의 친숙한 거래처들도 있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찾고 접근한다는 것도 사실 중요하다.
문구점은 어디에 있으며 약국은 어디에 있고, 치과는 어디로 갈 것인지, 필요로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가 최고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최고일 수밖에 없다. 우연히 다른 마을에 들르게 되면 요즘처럼 복잡한 도회생활에서 어디가 어디인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래되었다는 것이 모두 나쁘지 않은 이유이다.
나는 우리 동네를 사랑한다. 오래된 동네라 수목들이 매우 크고 고목에 가깝다. 그리고 이제는 마당의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눈에 익었다. 폭설에 몇 그루가 부러지면 아깝고, 안타깝고 거기에다 관리실에서 잘라 버리면 서운하기 그지없다.
몇 년 단위로 폭설이나 폭풍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많은 나무들이 부러지고 넘어졌다. 그때마다 관리실에서는 바로바로 잘라서 버려버렸다.
동네를 걷다가 보면 큰 나무들이 있었던 자리들을 기억한다. 듬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부 사람들이 그를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도회에서 나무는 그리 눈여겨볼 대상이 아니다. 베어도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느낄 것이다. 정든 다는 것은 오래되었다는 이유이다.
재건축을 한다고 난리이기는 하다. 재건축이 되면 위치가 좋아서, 조건이 좋아서 값이 올라갈 것이라고는 한다. 그래서 값어치가 있는 동네라고는 한다.
별 관심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오래되었다는 것이 모두 나쁘지도 모두 값어치 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녹슨 문짝을 발견한다. 혹시 재건축이라도 되면 살아질 것 같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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