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86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한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수 십 년 , 그냥 살다가 보니 집도 낡았다.수도에는 녹물이 줄줄 나오고온통 고장이라도 날까 봐 조심스럽다. 이제 재건축을 한다고 한다.그래서 집값이 올랐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은 과외 수익이고그냥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리라.그러나 그동안의 불편함과수 십년의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그냥 공돈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이 집은 단순히 집이 아니다.내 고향이고 내 가족의 추억이고 내 인생이 담겨 있다.나는 여기서 주어진 사명에 순응하며 한평생을 보내고 있다.나의 아이들은 여기서 성장했다.그들은 이 동네 어느 골목 어느 나무 밑에서 뛰어놀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그래서 나는 이 집을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이 재건축을 기대하지만 그 때문에 살고 .. 2026. 8. 27. 달력의 경계 밖 달력의 경계 밖 하늘이 높은 창에 어른거린다게으른 새 긴 울음을 뱉는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할 일 없는 느지막한 달력의경계 밖에 내가 서 있다 시간은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려와이쯤에나를 내팽개치고태연히 떠났다 늙은 황소가되새김질하듯 시간을 씹고 온통 적막이 팔짱을 끼고 있다 달력을 딛고 선선택 자유 물러난다는 것이제 배우가 아니라감독인가 2026. 8. 23. 여름의 소리 여름의 소리 하얀 하늘에 요란한 매미소리 오랜 기다림 끝에저마다 다른 목청이다 둥실한 뭉게구름에키 큰 미루나무가 걸리고 차르르르 잎을 떨어 산들바람이 받아 부른다 메에엥아직도 만나지 못한 그늘 쓰으랑여름 한 장이 또 넘어간다 이제 여름도 목이 쉰다 서러워 마라한평생 울지 못하는 벌레도 있다 2026. 8. 19. 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 웃음보다 평온함이 남은 얼굴로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 걸어온 길이 말을 대신하고가진 것보다 나눔 시간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 마음이 먼저 넉넉하여어려움 앞에서도 의젓하고 약거나 구차하지 않으며대범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 늘 맑을 수는 없겠지만스쳐 간 발자국에 은은한 꽃향기를 남기고 어느 날 바라본 표정에견뎌 온 세월이잔잔한 미소로 머무는 사람 큰 바위 얼굴⁽¹⁾내 표정에 이러한 삶이 보였으면 좋겠다---------------------------------------(⁽¹⁾ 다니엘 호손(미국, 1850)이 쓴 단편 소설의 제목) 2026. 8. 15. 도시농부 연작-4 토마토가 붉어지는 오후 도시농부 연작-4 토마토가 붉어지는 오후 우리 농장은 풍년이다. 줄기가 휘도록 방울토마토가 달렸다. 알알이 붉어지는 열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환해진다.사실 농장은 아파트 베란다 한쪽의 작은 공간이다. 지난봄, 화원에서 장난처럼 토마토 모종 다섯 포기를 사 왔다. 버려진 화분을 모아 심었더니 시들하던 모종은 며칠 뒤 파릇한 기운으로 다시 일어섰다.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잎이 자라고 줄기가 굵어지며 제법 농작물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농작물은 농사꾼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나도 모르게 농부의 마음이 된 것 같다.하지만 농부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더위에 잎이 시들었고, 너무 자주 준 물이 오히려 과잉 관.. 2026. 8. 11. 입추 입추 날 마다의 폭염을 돌아서서아침 바람은슬쩍 부드럽게 비켜간다 어정칠월건등팔월 하늘은 높아지고벼이삭은 고개를 숙인다 농부는 이제익어가는 백곡을 바라보며무를 심고배추를 심으며겨울을 들인다 폭염은 아직며칠 더 남았겠지만그와 맞서듯 하던내 마음도 먼 길을 걸어왔다 미처 내려놓지 못한 말들은소슬바람에 풀어 보내고 비워진 마음청명한 하늘 아래단단히 익어 가며 살아도 되겠다 2026. 8. 7. 가장 뜨거운 침묵 가장 뜨거운 침묵 나그네도 쉬어 간다는오뉴월 염천 세상이 잠시열중쉬어를 한다 골목은 숨을 접고창문마다 더위를 들여놓는다 나만 홀로밖을 내다보는데 움직이는 것이라곤혀를 길게 내민개 한 마리 한참을 헐떡이더니이내깊은 잠으로 기울어 간다 여름은가장 뜨거울 때가장 조용한 계절이다 2026. 8. 3. 산동네의 새벽 산동네의 새벽 새벽별 아래하늘만 동그랗게 열린 깊은 산동네어머니는 문살에 여명이 어슴푸레 비치면 곧장 부엌에 불을 지피신다일찍 연기를 피워야조왕신이 연기를 타고 올라가복된 밥을 내려 주신다 뒤 안에 깨끗한 볏짚을 깔고첫 우물물 사기그릇에 담아소반 위에 받쳐놓으신다아직 어두운 새벽 밥을 안치고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번지면첫 그릇은 조심스럽게 떠서부뚜막에 두신다 하늘에 감사인지길손을 위한 것인지군에 간 형님 몫인지 다음 그릇은 아버지 밥그릇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 산동네에서밥술이라도 먹고산다는 것에언제나 고마워하셨다 어머니는밥 한 그릇을 짓고도당신 몫은 늘 맨 나중이었다 2026. 7. 30. 머물지 않는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 인생은 잔잔해 보이는 바다와 같다. 늘 파도가 일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파고가 높고 거칠게 흔들릴 때도 있지만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보면 그것 또한 작은 출렁임에 불과하다. 삶의 잔잔함을 깨달을 즈음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머무름은 때때로 집착으로 변한다. 마음은 물처럼 나아갈 때가 있고 물러설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미래만 바라보거나 반대로 좋았던 과거의 한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집착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물결이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바다다. 때가 되면 과거는 놓아주어야 하고 닥치지 않.. 2026. 7. 26. 이전 1 2 3 4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