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97 마음에 익은 자리 마음에 익은 자리 낯익은 얼굴들이성당 안에 듬성듬성 보인다 한마을에 오래 살다 보니가끔 옛 이웃들이 생각난다동네에서 이웃을 마주치고안부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성당인지도 모른다 오래 다닌 성당에는 나만의 자리가 있다늘 자연스레 앉던 자리눈에 익고 마음에 익은 자리 조금 늦게 도착한 날에는 누군가 먼저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요즘 들어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보이지 않는다 한 곳에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을기억 속에 남겨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사람이 하나 둘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내가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깨닫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2026. 10. 12. 발자국 발자국 움퍽움퍽한 자국들발자국이하늘에 듬성듬성 떠 있다 풍덩풍덩 냇물을 지나고바람 부는 골목을 지나봉숭아 핀 담장 밑으로 이어진다 꽃 피는 날에도쏴아, 밀려오는 파도어느 곳에 그늘 없을까 없으면 또얼마나 쓸쓸할까 지나온 길은 지워지지 않고봉숭아 빛 발자국 몇 개하늘에 남아 있다 2026. 10. 8. 푸른 꽃 푸른 꽃 달빛도 가라앉은 강가긴 머리를 안개에 씻으며갈대 같은 하늘거림을 치맛자락 깊이 감추고홀연히 찾아왔다 사라져버린여명의 금빛을 쪼개어 물고 가는 작은 새 이슬 하나갓 깨어난 풀잎 위에 놓고 가는얼음처럼 차가운 은빛결핍도 악도 머물지 못하는푸른 세계끝내 피어나지 못한 꽃처럼서늘한 그리움이 되어새벽 강에 잠긴다 2026. 10. 4. 한 마디쯤은 있다 한 마디쯤은 있다 삶이시 월을 건널 때쯤이면들은 것도 많고본 것도 많다 고래 힘줄 같은 고집으로기회를 놓칠세라손을 휘저으며제 생각을 토로한다 거기서 거기인 오랜 친구너 댓 명이 모여막걸리한두 잔을 들다 보면내 말은 맞고 네 생각은 틀리고이편저편제 집에는 금송아지 백록담에는눈이 순한 흰 사슴이 뛰고천지연에는물안개를 뿜는고래만 한 괴물이 산다 일도 많고 말도 많은 인생발자취만큼할 말 한마디쯤은 가지고 산다막걸리에 놓친 고기가 크다 2026. 9. 30. 시골길, 그 때를 추억하고 시골길, 그 때를 추억하고 파릇한 보리들판을 걸으면시냇가 버들피리 소리 정겹고거름 냄새 푸근하다투박한 시골길이 나를 데려간다 모퉁이 돌아 울 밑에누이의 봉선화 피고마당엔 빨간 고추 익어가고닭 쫓는 어머니 소리 들린다 골목어귀 주먹만 한감나무가 통째 어깨를 내어주고 커다란 해바라기는 쉬어가라 빙긋이 웃는다 하늘이 차츰 붉어지면 주인보다 먼저 암소가 어슬렁어슬렁 집을 찾아들고 송아지는 천방지축 뒤를 따른다 지게에 하루를 가득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밥 짓는 연기가 반기고구수한 내음 먼저 마중을 나간다 사람도 반듯한 아스팔트보다투박한 시골길 같은 사람이 좋다묵묵히 땀 흘리며 가족을 안고 이웃을 품어 가는 사람이 더 좋다 시끌벅적 장터를 지나강 건너 산을 넘어길은 또 이어지고 진심을 담은 .. 2026. 9. 26. 황새 2( 추석에) 황새 2(추석에)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부모가 되어 자식이 되었습니다 진작 몰랐습니다왜 저만치 외발로 서 있는지바람은 왜 그토록 요란했는지 왜 나는필요할 때만 생각나는지를 언제나 등불 켜놓고때 거르지 않았는지를 물으시던거친 손마디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그 둥지그 옷자락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식이 있어 부모가된 것이 아니라부모가 되어 자식이 되었습니다 2026. 9. 22. 방관 방관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하늘은 창백하도록 차갑고 별은 아스라이 빛난다 서늘한 바람이 창을 흔들고 새벽잠을 깨운다 ‘늘 깨어 있으라’ 샘물 같은 맑은 생각과 정갈한 마음으로 푸른 향기가 스며드는 삶을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눈 세상의 대부분은 나 아닌 사람들의 일이어서 방관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말은 넘쳐나고 이해관계는 얽히고 기준은 흔들리고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모호해진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도 잠시 눈을 감는다 깨어 있으려는 작은 의지가 세상의 혼란을 덜어주지 않을까 남을 향하기 전에 나의 기준부터 곧게 세워야 하는 때 잘못을 모른 척하지 않고 말해야 할 때 말할 수 있는 용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적당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 앞에 자신을 .. 2026. 9. 18. 연어 연어 막 떠오르던 말 하나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손을 뻗는 순간은빛을 남기며 사라지고 또렷이 헤엄치던 것들도몸을 돌린 사이어느 물굽이로 흘러갔다 애써 거슬러 오를수록여울은 깊어지고이제는 은빛도 멀어지고 급히 붙잡은 몇 마디손바닥 위에서 맴돌다가이내 길을 잃는다 결국돌고 돌아말은 제 물길로 흘러가고나는 처음의 물가에 선다 2026. 9. 14.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보이지 않은 공간을 가르며네가 내게 보낸 공이쭉 뻗어 연결되는 빨랫줄처럼 해와 달이 흐르고마음과 마음이 흘러공이 골문을 들어가는 순간우리는 하나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별과 별이 빛으로 연결되고네가 보낸 공을 내가 받는다가슴과 가슴의 환호 내 뒤로 네가 있어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인생 한골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 (2026 북중미 월드컵 06.11. ~ 07.19.) 2026. 9. 10. 이전 1 2 3 4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