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91 방관 방관 늦은 밤 아니 이른 새벽 하늘은 창백하도록 차갑고 별은 아스라이 빛난다 서늘한 바람이 창을 흔들고 새벽잠을 깨운다 ‘늘 깨어 있으라’ 샘물 같은 맑은 생각과 정갈한 마음으로 푸른 향기가 스며드는 삶을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눈 세상의 대부분은 나 아닌 사람들의 일이어서 방관자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말은 넘쳐나고 이해관계는 얽히고 기준은 흔들리고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모호해진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서도 잠시 눈을 감는다 깨어 있으려는 작은 의지가 세상의 혼란을 덜어주지 않을까 남을 향하기 전에 나의 기준부터 곧게 세워야 하는 때 잘못을 모른 척하지 않고 말해야 할 때 말할 수 있는 용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적당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 앞에 자신을 .. 2026. 9. 18. 연어 연어 막 떠오르던 말 하나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손을 뻗는 순간은빛을 남기며 사라지고 또렷이 헤엄치던 것들도몸을 돌린 사이어느 물굽이로 흘러갔다 애써 거슬러 오를수록여울은 깊어지고이제는 은빛도 멀어지고 급히 붙잡은 몇 마디손바닥 위에서 맴돌다가이내 길을 잃는다 결국돌고 돌아말은 제 물길로 흘러가고나는 처음의 물가에 선다 2026. 9. 14.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보이지 않은 공간을 가르며네가 내게 보낸 공이쭉 뻗어 연결되는 빨랫줄처럼 해와 달이 흐르고마음과 마음이 흘러공이 골문을 들어가는 순간우리는 하나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별과 별이 빛으로 연결되고네가 보낸 공을 내가 받는다가슴과 가슴의 환호 내 뒤로 네가 있어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인생 한골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 (2026 북중미 월드컵 06.11. ~ 07.19.) 2026. 9. 10. 동구 (洞口) 동구洞口 오랜만에 찾아온 동구연인을 만난 듯낯설지 않음에 젖은 이끼를 어루만진다 큰 바위에 앉아누렇게 익어가는 먼 들판을 바라보니두둥실 떠가는 구름 동무들과 냇가에서물장난을 하고 바위에 올라 발가벗은 몸을 말리기도 했지 태산 같은 그날의 꿈들이켜켜이 남아 있는 곳그 꿈에서 조금씩 멀어져 왔지만 물은 흘러가도 들판은 다시 푸르러지고그날의 다짐들이 새로운 희망으로가슴에 꿈틀거린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들려주는지난날을 가만히 품고 내일을 바라본다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동구 그곳에서다시나를 만난다 2026. 9. 6. 잿마루 아리랑 잿마루 아리랑 물안개 뭉글뭉글한 날괴나리봇짐 메고조령관문 지나숲이 우거진 산길을 간다 금의환향을 꿈꾸며한발 한발 넘던 험준한 고개 주막 마루에 앉은 길손찬란히 부서지는 물소리쏟아지는 달빛집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다 길을 막아서는교귀정 노송에 손을 흔들고암반을 구르는 구슬을 벗하며한 모롱이 돌아서니 다시 걸음 잡는옛 사람들의 시비(詩碑) 잿마루의 새재 아리랑이 구성지다 2026. 9. 2. 물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아침부터 뒷목이 당기더니끝내 가슴 안쪽을천천히 비튼다 아쉬울 것도부러울 것도 없는데속이 쓰린다 손 안에 있던 것들이 손끝으로 밀려났다 지평선이 절벽이 되고잔잔한 바다가해일이 되어 선다 누군가를 붙잡고 싶다가도손끝만큼 남은 자존심이손을 내밀지 못하게 한다 손바닥 위의 것들이움켜쥔 손가락 사이로빠져나간다 분명히 잡고 있었는데 없다 2026. 8. 29. 달력의 경계 밖 달력의 경계 밖 하늘이 높은 창에 어른거린다게으른 새 긴 울음을 뱉는다 해야 할 것은 많은데 할 일 없는 느지막한 달력의경계 밖에 내가 서 있다 시간은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려와이쯤에나를 내팽개치고태연히 떠났다 늙은 황소가되새김질하듯 시간을 씹고 온통 적막이 팔짱을 끼고 있다 달력을 딛고 선선택 자유 물러난다는 것이제 배우가 아니라감독인가 2026. 8. 23. 여름의 소리 여름의 소리 하얀 하늘에 요란한 매미소리 오랜 기다림 끝에저마다 다른 목청이다 둥실한 뭉게구름에키 큰 미루나무가 걸리고 차르르르 잎을 떨어 산들바람이 받아 부른다 메에엥아직도 만나지 못한 그늘 쓰으랑여름 한 장이 또 넘어간다 이제 여름도 목이 쉰다 서러워 마라한평생 울지 못하는 벌레도 있다 2026. 8. 19. 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 웃음보다 평온함이 남은 얼굴로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 걸어온 길이 말을 대신하고가진 것보다 나눔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 마음이 먼저 넉넉하여어려움 앞에서도 의젓하고 약거나 구차하지 않으며대범하고 용기 있는 사람 늘 맑을 수는 없겠지만스쳐 간 발자국에 은은한 꽃향기를 남기고 어느 날 바라본 표정에견뎌 온 세월이잔잔한 미소로 머무는 사람 큰 바위 얼굴⁽¹⁾내 표정에 이러한 삶이 보였으면 좋겠다---------------------------------------(⁽¹⁾ 다니엘 호손(미국, 1850)이 쓴 단편 소설의 제목) 2026. 8. 15. 이전 1 2 3 4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