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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아버지7

황새 황새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어 자식이 되었습니다 진작 몰랐습니다 그는 왜 저만치 있는지 왜 바람소리 요란한지 필요할 때만 생각나는지를 혹한에 눈보라쳐도 든든한 나무 한그루 서 있었습니다 미처 그 그늘 깊어 그 향기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식이 있어 부모가 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어 자식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 (* 황새의 습성은 독립된 쌍을 이루어 생활하며 어린 새는 둥지를 떠난 뒤에도 일정기간 어미와 함께 생활) 2022. 8. 28.
넉넉한 파초 넉넉한 파초 방학하여 집에 가는 날 일 년 추수 끝난 노적가리가 마당에 쌓여 있고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신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냥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흐뭇하게 미소만 지으셨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동네 입구를 바라보고 계셨겠지 언제나 너그러우셨지 넉넉한 가을 들판 같으신 아버지 오늘 익어가는 들녘을 서성이며 바람 소리를 듣는다 2021. 8. 15.
반주飯酒 반주飯酒 오래전 아버지께서는 식사 때에 늘 반주飯酒를 하셨고 그것도 딱 한 잔이셨다 반주 한 잔은 보약보다도 났다고 하셨다 어느 때부터는 아예 소주 한 병에 유리컵 하나를 뚜껑에 덮어 사랑방 한편 궤짝 옆에 놓아두고는 하셨다 상 차리기 번거롭다는 뜻 이셨다 어느 날 속상하는 일 있어 어깃장으로 병체 벌컥벌컥 마셨더니 드디어 해롱해롱 쓰러졌다 보약 맛을 단단히 봤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김만 빠졌다 언젠가부터 내 식탁에도 술 한 잔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술이 달라졌다는 것 외에는 직접 준비하는 것도 아버지와 같다 내 아이도 아버지를 보고 있을까 2021. 7. 6.
시골길 2 시골길 2 시골길을 좋아한다 파릇한 보리 들판을 걸으면 시냇가 아이 피리소리 정겹고 간간히 거름 냄새 푸근하다 투박한 시골길이 간다 마을 들어 모퉁이 돌아서면 울 밑에 누이의 봉선화가 피고 마당에 빨간 고추가 마르고 닭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린다 골목길로 감나무가 어깨를 내어주며 쉬어가라 해바라기 빙긋이 웃는다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먼지 속을 아이들이 쫓아간다 신작로 미루나무에 매미 운다 해질 무렵 주인보다 먼저 암소가 어슬렁어슬렁 집을 찾아들고 송아지 천방지축 뛴다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밥 짓는 연기 오르고 구수한 내음이 먼저 마중을 나간다 사람도 반듯한 아스팔트보다 투박한 시골길 같은 사람이 좋다. 묵묵히 땀 흘려 가족을 안고 이웃을 안고 가는 시골길 같은 사람이 더 좋다 시끌벅적한 장.. 2020. 9. 4.
아버지 아버지 내 아버지 그 농촌에서 일 한번 안 시키셨지 공부해라는 물론 야단 한 번 안치시던 아버지 막내로 손주 같이 태어나서였을까 그냥 무심이었을까 속으로는 그러셨겠지 막내아들 출세는 몰라도 남만큼은 잘 살아야 된다고 항상 인자 로이 웃으시며 기껏 하시는 아버지 최대의 잔소리 허, 그참! 할 말이 없으셨을까 양반의 자존심이 생존의 기둥이셨던 아버지 산촌에서 태어나 근동을 벗어나 보지 않으셨지만 집안 얘기와 구수한 옛날 얘기 정말 재밌게 해주셨지 새벽에 새끼 꼬아 가마니 짜고 낮에 일하시며 틈틈이 소죽거리 만들어 저녁에 끓이고 계시던 아버지 거칠어지고 깊이 갈라진 손마디를 통증을 참아 겨우 불에 지지고 계셨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막내를 보시며 흐뭇해 하셨지 아니 안타까우셨을까 방학식 날 확인 받으러 내놓은 성.. 2020. 7. 23.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육남매 대가족 뒷바라지에 수구냉기 갈매골 콩 고추밭 다 지으시고 한 뼘도 안남은 산그늘 소쩍새 소리에 놀라 부랴부랴 집으로 내달리시던 어머니 대가족 저녁 준비에 어머니에겐 언제나 푸근한 솔가지 냄새가 났지 왜 그리 찡찡되었을까 못난 육남매의 막내가 유세인가 안 마(실) 미나리 깡 밤새 다듬은 미나리 몇 단을 머리에 이고 가시는 시오리 장날은 고개가 빠지셨겠지 한 단에 이십 원 받아 길순원 자장면 한 그릇 시켜주고 정작 본인은 양 많은 느티나무 집 막국수가 그리 맛있다던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짜증스럽기 도 하셨겠지 자신이 안타까워서 약이라도 좀 먹여야 되는데 우리엄마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 약은 내게 필요한게 아니었을 텐데...... 쌀 한 되 팔아 소풍날 손에 쥐어주시며 시원한 주스 .. 2020. 7. 23.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는 우리 집안을 참 좋아한다.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가문이 가끔 미디어를 통하여 전통적 유교 집안으로, 또 역사적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직계가 아닌 종친의 이야기이니 그 보다가는 나는 나의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부였다. 그러나 완전 무지렁이 농사꾼은 아니고 단순히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한학을 하고 분명한 의식을 가진 참 어른이셨다고 표현하고 싶다. 새벽부터 밤까지 농사일에 몰두하셨지만 나름의 자존감을 잃지 않은 분이셨고 누가 뭐라고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신 분이셨다. 평소 별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본인의 소신을 확실히 하셨고 정황으로 볼 때 당시에 그저 농촌에 살고 있는 보통 .. 2011.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