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수필 & 긴글129

잊지 못할 복숭아 서리 /김탁기 /자작나무수필 동인지 잊지 못할 복숭아 서리 /김탁기 /자작나무수필 동인지 중학교 1~2학년 여름방학 때쯤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동구에서 온종일 물놀이를 하거나, 바위를 건너뛰거나, 땅따먹기를 하며 놀고는 했다. 거의 아침에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배가 고프면 그때 집으로 들어가 대충 허겁지겁 먹고 다시 나오고는 한다. 동구는 우리 동네 어귀로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집채만 한 바위와 넓지는 않지만 암반 위로 흐르는 시내가 있는 곳이다. 여기는 우리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피서지이다. 여름이면 애들은 시내를 막아 물웅덩이를 만들어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느티나무 밑 너럭바위 위에서 큰대자로 누워 점심 후의 낮잠을 즐긴다. 그날도 물장구를 치고 자맥질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지치기도 하고, 물놀이를 하.. 2023. 8. 3.
성모님과 길상사 관음상 성모님과 길상사 관음상 얼마 전 우연히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교수님의 작품을 접할 일이 많이있었다. 최 교수 작품은 가냘프면서도 편안하고 뭔가 생략된 듯하면서도 빠진 것이 없다. 어떤 때는 약간 익살스럽기도 또 무표정하기도 하지만 다시 보면 깊은 순수와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재질이 차가운 대리석이나 청동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다. 조각에 문외한인 내가 감히 평할 수는 없고 무식한 나만의 느낌이다. 나는 생략된 듯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이 좋아 우리 집의 성모님도 최 교수 작품이다. 전철 한성대입구역에서 북한산 방면으로 나서면 뿌리 깊은 마을 성북동이다. 마을 초입은 평범한 상가들이 어수선한 지역이지만 곳곳에 유서 깊은 문화 유적지들이 숨어 있다. 간송미술관, 운우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미술관과 기념관.. 2023. 7. 25.
80년대 중동 일기 80년대 중동 일기 창으로 솜털 같은 구름들이 망망히 펼쳐진다. 처음 타는 비행기이다. 해외업무가 많은 회사에 입사하였으니 해외를 나가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를 위해 직장을 옮긴 것이 아닌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라고는 처음 와 본 곳으로 생소하고 어리둥절하다. 거기에 어리지만 정규 직원이라고 기능원들을 인솔하여야 하고 회사의 서류 등 소화물도 많다. 출국 절차는 회사의 담당자가 나와 익숙하게 처리하고 필요한 사항을 기계적으로 전달한 후 돌아가 버렸다. 사실 이번 해외근무는 계획과 달랐다. 이렇게 촉박하게 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막 첫 애가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갓 결혼한 아내나 첫 애에 대한 헤어짐이 아쉬웠고 사실 거주할 집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내가 철이 .. 2023. 7. 17.
교육의 질은 선생님 교육의 질은 선생님의 질 누구나 학창 생활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성장과정의 인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교직이란 숭고한 것이고 그만큼 사명감도 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생님은 존경받아야 하고 스스로가 존경받을 수 있도록 소양을 갖추어야 될 것이다. 요즘 교육이 위기라고 한다. 선생님의 사명감과 학부모의 기대의 문제라고 본다. 단순히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경우에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교직이 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이 사회가 함께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교직에서 은퇴하신 어떤 선생님들을 보면 재직 시의 책임과는 관계없이 교육자였다는 사실.. 2023. 7. 13.
바우상상 /김탁기 바우상상 / 김탁기 내 어릴 적에, 높은 태양이 정수리를 내려 때리는 오뉴월의 한가한 오후에 오랜 시간을 추억하며 글을 써본다. 내 고향 용바우는 야트막한 야산 골짜기를 따라 논밭이 물 흐르듯 펼쳐지는 곳으로, 산 밑에 조그만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아주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산촌이라 하기에는 산이 야트막하고 단순히 시골이라 하기에도 어중간한 작은 마을로, 봄에는 진달래가 온산을 물들이고 여름에는 산을 굽이굽이 돌아 논밭에 작물이 아기자기 펼쳐진다. 특산물이나 특용작물은 없고 보편적인 논농사를 주로 하는 곳으로 대부분이 자연 지형의 정리되지 않은 논밭들이다. 지리상으로 보면 마을 밖 큰 도로에서는 마을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골짜기여서 일설에는 난을 피해가는 길지라고도 한다. 사람들 역시 마을 .. 2023. 7. 3.
저녁 편지 저녁 편지 가끔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컴퓨터 워드로 뚝딱거려 쓰는 편지가 아닌 손으로 꾹꾹 눌러 쓰는 편지 말이다. 손으로 쓰더라도 볼펜이나 손쉬운 필기도구가 아닌 펜이나 만년필로 썼으면 한다. 만년필로 쓴다면 새것이 아닌 오래되어 낡은 것이었으면 더 좋겠다. 적당한 편지지에 손에 익숙한 펜으로 한 단어, 한 문장에 정성을 다해 또박또박 써 내려갈 때 순간의 진실 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고 사각 거리는 펜끝의 운치도, 성취감도 있을 것이다. 손으로 쓰는 글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용을 잘 못 쓰거나 잉크라도 떨어뜨리는 날이면 낭패다.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그러니 신중한 글이 되고 사연도 깊어지게 된다. 어떤 때는 매끄럽지 못한 글이 되기도 하겠지만 어느 정도 써 내려간 후에는 다.. 2023. 6. 16.
인생이라 부르는 그 향기(사진, 라울 뒤피 作) 인생이라 부르는 그 향기 아카시아 향기가 온통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운 계절이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나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항상 향기가 난다. 꾸미지 않은 부드러운 표정에 엷은 미소로 차분하게 나누는 말씨에서 인품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막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깊은 인품의 향기를 더해준다. 사람에게서는 이런 향기가 나야 한다. 결코 인공의 향수 냄새가 아닌 고운 심성을 바탕으로 깊은 지성에서 나오는 인품의 향기 말이다. 향기에는 종류가 있다. 우선 자연에서의 향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에는 숲의 향기를 들 수 있다. 숲속에 들어서면 코끝을 스치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 2023. 6. 2.
유난히 길었던 하교 유난히 길었던 하교 하교 길이 실재로 유난히 길었던 어떤 날의 이야기이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엄청난 산골 마을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대도시로 나가게 되었다. 대도시로 가본 경험은 친척 방문이라도 전혀 없다. 오로지 고교 진학을 위해서 갑자기 결정을 하게 되었고 나름 어려운 시험을 거쳐 도시로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 작은 누님이 살고 있었기에 이를 연고로 진학지역을 결정했고 우선은 누님 댁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즐비한 건축물과 많은 차량, 환한 네온 간판 등은 차치하고라도 가장 큰 변화는 등하교 방법이었다. 집 앞에서 학교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기에 주로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누님 댁으로부터 학교는 버스로 약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그러던 어.. 2021. 12. 1.
오대산 산행을 하다(10/21일) / 김탁기 오대산 산행을 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하다. 오늘 오대산 단풍 산행을 했지요. 이때쯤이면 의례히 오대산 단풍이 최고이고 이로부터 차츰 남하하여 약 보름 후에는 내장산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계속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지요. 오늘 막상 산을 올라 보니 잎들이 미처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 버려 녹음은 아니지만 ‘오메 단풍 들겠네!’ 의 그 불타는 맛은 느낄 수 가 없더군요. 기후 변화로 요즘은 절기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어떤 에세이 작가와 함께 걷는 산행이 되었습니다. 다 수의 작품을 쓰신 작가라 나와 대등한 대화가 될 수 는 없겠지만 몇 번인가 산행을 동행하여 거리감이 없어지기도 하고, 정서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하며 오르노라니 길고 험한 산행이 조금은 가벼워졌습.. 20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