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추억7

첫눈 내리는 날 첫눈 내리는 날 꽃잎 팔랑팔랑 날리더니 순식간에 빙판이 되어 씽씽 가래질로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난다 저 순결한 설레임 하늘이 선물한 새하얀 도화지에 온 천지가 푸근한 꽃밭이다 나목이 소복소복 꽃을 갈아입고 서설이 희고 포근한 가슴을 헤쳐 찾아드는 작은 새와 대지에 젖을 물린다 감나무 끝에 부엉새 울고 화롯불 뒤적이며 뒤란의 무 깎아먹던 이야기 밤은 두런두런 깊어간다 2021. 12. 19.
뒤 돌아본다 뒤 돌아본다 움퍽움퍽한 자욱들 발자국이 하늘에 듬성듬성 떠 있다 삶이 무거웠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모양은 퍽이나 찬란하다 풍덩풍덩 큰 물을 지나고 저 멀리서부터 따라온 발자국들 바람 부는 골목을 지나고 봉숭아 핀 담장 밑으로 이어지는 길 차겁게 건너온 인생의 편린들 쏴아 하고 밀려오는 파도 파도 어떤 삶에 그 자욱이 없으리 없으면 또 그 얼마나 쓸쓸하리 생에 잃어버린 시간을 부르지 마라 추억의 자욱은 가슴에 있고 항상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2021. 9. 24.
궤적 궤적 깊은 잠에서 깨어나 곧바로 일을 시작하네 태연히 낮잠 후의 여인네가 마른빨래를 개듯이, 샛바람에 깊은 서랍 속으로 밀려 꽃피고 눈 내리는 소리도 외면한 체 길고 긴 잠을 자네 태엽이 감기기까지는 봄날 떨리는 손으로 손목에 채워 주던 둥그런 시계, 새색시 어느덧 은빛 눈발이 내려앉고 내 넓어진 이마에는 바람이 지나가네 바늘의 궤적만큼이나 넓고 깊어진 애틋함 찬란하네 가끔은 지난날을 만져보는 것도 기쁨이네 -------------------------------------------------------------------------------------------------------------- 잠자던 시계의 태엽을 감자 금방 삶이 전개 되네 마치 중년 여인네가 낮잠에서 일어나 마른 세탁물을 정리.. 2021. 2. 14.
난(蘭) 난(蘭) 향기가 있다는 것은 두고 온 아름다움이 있다는 거지 향기가 깊다는 것은 추억이 그만큼 깊다는 거지 남겨진 빚이 있다는 거지 향기가 난다는 것은 아름다운 간격이 있다는 거지 너와 나 사이에 딱 그만큼 돌아 서 있어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는 거지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그 거리가 멀지는 않다는 거지 아득한 향기 떠오를 듯 말 듯, 벽장에 숨겨놓은 고운 첫 사랑 같은 것이지 어디선가 날아오는 향기 그 향기의 주인공아 아득하구나 2021. 1. 7.
가을 엽서 가을 엽서 울 넘어 굵은 감 가지째 넘어왔군요 이웃집은 너그러운 분이니 그냥 두세요 어머니가 큰소리로 닭을 쫓네요 고추는 볕 좋은 마당에 말려야 맛이 달지요 내 마음 정겨운 산촌으로 달려갑니다 마을길이 보석처럼 환히 빛나고 있군요 아낙네가 과일이랑 한 광주리 이고 가네요 강아지가 쫄래쫄래 따라가고요 짧은 해 산 그림자 길어지면 은 고독하고 서러운 달이 뜨지요 별이 산촌의 작은 외로움 달래주지요 달빛에 마을 앞 실개천 환히 부서지고 지천에 하얀 꽃이 가슴을 채우지요 그래서 정겨운 작은 마을이잖아요 2020. 9. 9.
보랏빛 꽃 보랏빛 꽃 별도 저무는 여명 보랏빛에 쌓여 신비스러움을 생소하지 않게 다가와 가깝지 않으면서도 창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체 익숙한 미소를 보이는 빛 반갑다는 인사도 없이 바라보다가 별이 내리기 전 홀연히 사라지는 신비 익숙하지만 먼 거리 대화를 해보지도 손을 잡아보지도 않았지만 길고 긴 강을 함께 흐른 영혼의 빛 절로 뜨는 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손을 뻗쳐도 닫지 않고 불러도 대답 없는 가슴에 아린 점 하나만을 남기는 공허 아쉬움을 놓고 가는 처음부터 별이 되어야 할 야속한 빛 이제는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때 영원한 별이 되어버린 그를 위하여 보랏빛 와인을 높이 들어야 하는 때 그 어디에서 영원히 빛나기를 내 사랑하던 그대 보랏빛 꽃이여 2020. 8. 9.
만화와 무협 소설을 읽던 시절 우연히 생각이 났다. 내 어릴적 등하교 길은 시오리 길, 6km는 됨직하다. 8-9세 어린 시절부터 하루 시오리 시골길을 걸어서 다녔다. 아침에는 늦지 않기위해 책보자기를 허리에 메고 뛰는 시간이고 하교길은 마냥 느긋한 시간이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도 집에 돌아오면 해가 뉘엿 뉘엿 .. 201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