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수필 & 긴글

살을 에이는 추위

by 탁구씨 2005. 12. 18.

오늘,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추운 날씨 였다.

아침 성당을 갈때도 그랬지만 예식장을 가기위해 전철로 가는 눈길은

볼이 얼얼하고 귀는 떨어지는 듯한,

정말 그 옛날 어릴때 느끼던 그 추위같은 매서운 추위였다.

그래서 그런지 춥긴해도 머리는 산뜻해지고

가슴은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어릴때 국민학교 시절,

시오리 산길을 이런 추위속에 그저 춥다는 정도의 생각만을 가지고 

신나게 뛰어 다녔다.

첩첩 산중 마을로 방학을 하기 직전에도 그렇고 개학을 하고도

한참 동안은 눈과 추위가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다녔던가 싶다.

 

눈이 들어오는 헌 운동화에 그것도 한참 달리다 보면

넘어 들어온 눈이 녹아 양말이 다 졋기도 했고,

양말 또한 변변치 못하여 발가락 하나쯤은 보통 구멍이 나 있었다.

옷은 얇았고 어머니는 형의 옷을 한벌더 잎혀 줬지만

난 기어코 보기 싫다고 그냥 내 뛰었다.

그래도 그때는 당연한것으로 여겼기에 불평을 하거나 싫어한 기억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따뜻한 기억도 있다.

눈이 온 날 보통 학교에 갔다 오면 운동화가 다 졌기 마련이다.  

당연히 운동화는 한켤레 뿐이고,

아버지는 밤새 이 운동화를 소죽을 끓이는 가마솥 뒤에 얹어 다 말려 줬고

아침에 학교에 갈려고 신으면 정말 따끈 따끈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어머니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이면 난 눈덮힌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하얀 순백의 순결함이 좋고, 푸근하게 쌓이는 그 풍요로움이 좋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참 좋다.

눈 오는날 토끼를 잡겠다고 -한마리도 잡아본 기억은 없지만-

뛰어 다니던 추억이며

아침에 일어났을때 온세상이 하얗게 덮혀 있으면 환호하며 뛰어나와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도, 형과 함께 마당의 눈을 치우던 기억도,

집앞 논밭위에 쌓인 눈위를 발자국 꽃무늬로 크게 그림을 그리던 기억도 좋다.

 

몇년전인가, 눈이 많이 내렸을때에 아파트 주차장이 얼어붙어 고생한적이 있다.

정남향의 집이라 겨울에 따뜻한것은 좋은데 주차장이 건물뒤 북쪽에 있어

매년 눈이 오면 거의 봄까지 녹지 않는다.

그런데 그후 눈이나린 일요일 아침에 어떤 연세드신 분이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 했다.

 

그때 나도 나가야 된되는 생각은 하면서도 주저하고 있는데

조금후에 보니 또 다른 분이 합세하고 있었다.

그때야 나도 나갔고 급기야 아파트 주민 십수명이 함께 눈을 치웠다.

그때 어떤 집에서  커피를 끓여 오신분도 있다.

한 아파트에 십수년을 살고 있지만 참 흐믓한 기억이었고

지금도 난 눈이오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 추운 날씨에 눈까지 내렸고 또한 눈 덕분에 차를 타지 않고

전철을 향해 걸으면서 문득 어린시절에대한 생각이 났다. 

그래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마침 일요일 오후

조용한 분위기를 틈타 다시한번 추억을 더듬어 본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애틋하고 그리웁지만 나또한 그시절이 참 포근했고

정감이 있으며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해본다.(2005.12.18.16시)   

'수필 & 긴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2/7일)  (0) 2006.02.07
새해가 시작 된후  (0) 2006.01.09
계절  (0) 2005.11.10
아내 없는 새벽  (0) 2005.11.08
10월 31일의 편지  (0) 2005.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