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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아내 없는 새벽

by 탁구씨 2005. 11. 8.

아내가 평창 어느 곳으로 모임이 있어서 갔다.

어제 아침부터 약간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 한참 꿈같은 시간에 일어나 애들을 깨워야 했으며 늦게 일어난 놈들이 도리어 신경질을 부리는 통에 영 심사가 틀린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이놈을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준 다음 다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모닝콜이 몇 번인가 울렸지만 무심코 누웠다가 갑자기 생각이나 후다닥 일어나 또 애들 깨우고 내 화장실 갔다 오고...

그 와중에도 놈들은 대답만 하고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큰 놈은 어제 숙제 때문에 늦게 잣다며 가만히 좀 두란다.

에라 이 시간, 일찍 일어난 김에 뉴스나 보려다가 이 글을 쓴다.

 

식탁은 어제 새벽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이 랩도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메모장에는 틀림없이 국 데워먹고 반찬은 어떻게 하고... 등등이 쓰여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매번 있는 행사다. 늘 차려놓고 끓여놓고 가지만 나나 애들은 그것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늦게 일어난 놈은 그냥 눈만 비비고 밥 먹으라는 말은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학교로 내 졸긴다.

 

아내는 매일 이렇게 지냈을 것이다.

아침마다 난 애들 깨우는 소리에 좀 조용 조용히 하라고 하고, 아내는 살금살금 깨워 밥은 안 먹으니 빵과 우유를 챙긴 다음

차로 학교로 데려다주고 돌아와 나를 깨운다음, 그리고 큰 놈을 깨운다. 

 

어제저녁 바람이 몹시 불어 빗소리와 함께 복도에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요란 스러 웠다.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이라 책을 좀 보려다가 낮에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눈이 몹시 아파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 나도 눈이 많이 피로해짐을 느낀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종합검진을 다시 받으라고 성화지만 바쁘지도 않은 생활이 어떻게 쉽게 움직이지를 못한다.

사실 종합건진은 아내가 받아야 할 것이다.

너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마침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낮에 잠시 통화를 했었는데도 교육장 분위기가 너무 좋단다.

가을 끝자락의 주변 풍경도 시설도 교육내용도 정말 좋으며, 그 시간 거기 있을 수 있음을 정말 감사한단다.

일 년에 한두 번, 그런 시간이 정말 좋은 모양이다.

그런데도 덧붙여 또 밥, 간식, 애들 학교, 등등을 또 챙긴다.

어쩔 수 없는 천성이다.

 

이제 좀 조용하고 여유 있는 시간,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려나..

그리고 보니 내가 또 늦었다. 지금부터 옷 입고 현관을 쫓아나가 차에 시동을 걸기까지는 5분이 소요될 것이다.

직장 생활 이십 수년 중 일어나서 세수하고 대충 식사하고 시동 걸어 올림픽대로에 들어서는데 소요시간 15분 정도.

모두 무슨 군사 훈련하느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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