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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바우상상 탁구의 추석

by 탁구씨 2019. 9. 12.

  추석이 되면 시골 고향으로 우리 가족 대부분이 모인다. 이제 몇 가구 남지 않은 시골 동네가 이날은 그래도 떠들썩하게 사람 사는 동네가 된다. 우리 마을은 내가 어릴 적에는 50여 가구에 수 백 명이 사는 일반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0여 가구에 겨우 몇 십 명이, 그것도 연세가 많으신 분들만이 사신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되도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으며 오히려 어르신네들이 일찌감치 역 귀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산소가 있고 제일 큰 형님이 마을을 지키고 계신다. 그러니 부모님 밑으로 2~3대 30여 명이 추석에는 모이게 되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우리 집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분주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추석 전야에는 마당에서 삼겹살 구이를 하는데 가풍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삼겹살만이 아니다. 목살, 등심, 닭똥집, 김치, 버섯 등 구울 수 있는 것은 다 굽는다. 우리 대에서 아래 대, 그 아래대까지 전국에서 모인 가족들이 불가에 둘러앉으면 조용하던 산골 동네가 시끄러워진다.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 산소에서도 이 모습이 보이고, 들리시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온 가족이 마당 모닥불 가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간단한 불장난도 용인된다.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모습들이 또 하나의 추억으로 전해내려 가리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는 동안에 지붕 위로 추석 달이 두둥실 떠오른다.

   명절이란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평소 고향을 떠나 있다가도 명절이 되면 부모님 생각이,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그리고 고향의 모든 추억들이 생각 키운다. 고향에서 명절을 빼면 무미건조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통 대란을 겪어가며 고향으로 향하는 것일 것이다. 간혹 특별한 이유로 명절에 고향을 찾지 못했을 때에는 그 섭섭함이 매우 크다.

   아침 차례를 올린 후에는 가까운 산소에 성묘를 간다. 수 십 명의 가족들이 한참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의 논두렁길을 줄을 지어 가게 되는데 꽤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된다. 이는 산 위에서 보면 우리 가족들 뿐 만이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여러 가족들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광경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들이 숫자가 많으니 제일 줄이 길다.

   부모님 산소에서는 우리 집이 내려다보인다. 우리 집은 동네의 거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면으로 들판이 있고 저 멀리는 큰 느티나무와 바위들이 있는 동구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의 위치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시골집 마당에는 파초가 무성하게 자란다. 북부 내륙이라 기온이 낮아 잘 자라지 않는 식물이지만 옛날부터 우리 마당에는 꽤 큰 화단이 있고, 그때부터 파초가 우리 집 상징이 되어 자라고 있다. 나는 시골집에 갈 때마다 이 화단을 조금 손질해보는 때도 있다. 우리 가족 모두 화초를 좋아 하지만 농촌은 늘 바쁘기 때문에 손질이 안 되어 있을 때가 많다.

   성묘가 끝나면 길이 멀고 일이 있는 가족들부터 떠나는데 큰 형님 내외분은 가장 바쁜 시간이다. 무엇이라도 좀 더 줘서 보내려고 바쁘시다. 사실 두 분은 그 전날부터 챙기기 시작한다. 나도 늘 돌아올 때에는 자동차 트렁크가 넘치도록 담아서 온다. 큰 형님께서 힘든 농촌생활에도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는데에 늘 감사하고 죄송스럽다.

   언제나 가 볼 수 있고, 또 돌아갈 수 도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더욱이 그 고향이 시골일 때 그 느낌은 더욱 좋다. 항상 편안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다준다. 도회 생활에서 지쳐 있을 때에도 고향을 생각하면 다 풀린다.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고향엘 가기도 한다. 성묘도 하고 어릴 적에 놀던 동구의 놀이터와 논밭의 시골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고향은 어머니 같은 곳이다. 내게 이 아름다운 고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사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엘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든 전경이 눈에 훤하다. 가족들을 보지 못하여 섭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지 못하여 죄송스럽다. 곧 바쁜 일들이 끝나면 자주 찾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하시고 즐겁고 평안한 명절이 되시기를 빕니다.  (2009.10.04 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