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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古宅) 답사(踏査) 여행을 하며

by 탁구씨 2019. 8. 29.

고택(古宅) 답사(踏査) 여행을 하며

 

  얼마 전부터 중학교 친구 네 명이 모여 고택 답사 여행을 다니고 있다.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 모인다고 하여 사목회(四木會) 여행이다. 처음 사목회는 등산모임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고 시간적으로도 자유롭기에, 한 달에 한 번 씩이라도 모여 등산을 하자고 의논하여 많은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아직은 일정이 맞지 않은지,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생각처럼 자주 모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친구 네 명이 식사를 하다가, 여행 겸 고택 답사를 해보자는 말에 모두 의기투합하여 단번에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실 고택 답사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고택 답사라고 하면 고건축에 대한 건축적 소양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 고택과 관련하여 역사적 내력이나 인물, 배경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답사를 통하여 좀 더 사실적으로 체험해보고 생각해보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건축이나 역사에 대해 학문적이나 직업적으로도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당연히 고건축에 대한 지식도 역사적 지식도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처럼 전통이나 옛 것에 대해 소중함을 알고 그에 대한 애착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고택 답사가 아니라 고택 답사를 빙자한 친구들끼리의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 될수록 출발 전에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해설사를 만나게 되어 설명을 듣다가 보니 조금씩 답사여행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이 여행의 의미는 답사 외에도 많다. 친구들이 자동차라고 하는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이동하며 온전히 답사 일정을 함께하게 되니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온 애환이나 가정 이야기, 사업 이야기 등을 자연스럽게 터놓게 되어 더욱 친밀하게 되었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고택 답사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중에 기념할 만 곳이 있으면 들린다. 사찰이기도 박물관이기도 전시관이기도 하다. 식사도 지역적 특징이 있어 보이는 집이면 어떤 곳에서나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곳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만장일치이다. 한 친구는 그동안 바쁘게 지내오느라 이런 유의 여행이 처음이란다. 답사도 하고 여유도 부리고 이제 그럴듯한 여행 모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 친구의 이런 제안이 있었다. ‘우리 이제 여행을 하며 시간이나 돈 따위에 제약을 받지 말자.’ 우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여행이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이 친구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구속감에서 벗어나자는 뜻도 있다. 그러나 목적지에 연연하지 않다가 보니 시간적으로 여유로움이 있다. 계획하였던 일정에 한 곳쯤 덜 들리면 어떤가? 돈도 그렇다. 우리 여행지의 대부분이 지방에 있어 경비를 많이 쓸려고 해도 쓸 일이 없다.

 

 우리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면소재지의 끝 부분, 산 밑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학교이다. 담장 한편으로는 시내가 흐르고 다른 편에는 밭과 과수원이 있다. 운동장을 벗어나면 시야에 산과 하늘만이 보인다. 정말 소박하고 정겨운 시골 마을이다. 대부분이 농촌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장환경이 비슷하다가 보니 심성도 비슷하다. 어릴 때부터 순박하고 착한 시골 아이들이었다. 중 3이 되면서부터 진학을 위하여 조금 소원해지게 되고, 가까운 도시나 멀리 부산, 서울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담당하며 지내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서야 다시 연락이 되고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되는 대로 끼리끼리 모여 식사를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이번 사목회 답사 모임도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 번째 답사는 강릉지역이었다. 선교장과 오죽헌엘 들렸고, 맛 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소문난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등 아주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리고 안동의 하회마을과 그 일대,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과 수덕사, 아산의 맹씨 행단(맹사성 고택)과 외암마을, 아산의 공세리 성당과 유보선 생가, 군포의 동래 정 씨 고택과 수리사, 보은의 최감찰 고택과 법주사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은 종손이 마침 일행 중 한 친구와 친구여서 서애 유성룡 대감의 충효당에 일박을 하며 주변 고택을 돌아보고 체험하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고택 답사를 통하여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예측해 본다. 전통은 현재와 미래의 잣대이다. 답사 횟수가 쌓여 갈수록 우리 문화와 민족에 대한 무한 긍지를 느낀다.

 

 우리들은 철저한 선비문화권에서 자랐고 또한 유명 고찰 가까이에 출신학교가 있다. 선비문화나 불교문화는 자연스레 고택 탐방이라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 종교적으로는 각기 다르나 문화적 감각은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고택이든, 향교이든, 성당이든, 교회이든 별로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대웅전 마루에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들에게 특징이 있다면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의 의견이든지 먼저 내놓은 의견을 따른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우리는 아름답게 익어가고자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시간과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이며, 비록 각자가 살아온 모습이 다를 지라도 남은 세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이 시대는 자기 계발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시간도 돈도 아끼지 말아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가끔씩 하는 이런 여행은 추억도 되고 활력소도 된다. 오늘 답사도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