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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바우상상 탁구의 반주(飯酒)

by 탁구씨 2019. 8. 17.

반주(飯酒)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으면 습관적으로 우선 술을 한두 잔씩 마신다. 마시고 나면 낮 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고 밥맛이 훨씬 좋아진다. 원래 상념이 많아 머리를 혹사시키는 타입이라 퇴근 후에는 언제나 입안이 깔깔한데 식욕을 돋우는 데에는 이것이 최고이다.

처음 반주로는 이것저것 아무거나 있는 술로 마셨는데 요즘은 저녁 반찬에 따라 골라서 마신다. 반주를 하지 않을 때에는 술이 없으니 종류를 고를 수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장 보러 가면 의례히 몇 종류의 술을 골라서 준비한다.

 

일반적으로는 소주를 많이 마신다. 조금 특별한 한식 나물 반찬 같은 것이 있을 때에는 낮은 도수의 전통 곡주를 마시고, 양식에 가까운 고기류가 있을 때에는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 도수가 높은 양주도 산뜻하게 입맛을 돋우는 데에는 좋은데 일부러 사기에는 가격이 부담이 된다. 그런데 맥주는 오히려 량이 많아 식욕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가능한 적게 마신다. 그래도 기분 전환에는 맥주도 좋다. 중국술이나 각종 과실주는 향취가 있어 식사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역시 반주로는 소주가 최고이다.

 

어릴 적에 우리 사랑방에는 언제나 소주나 막걸리가 있었다. 아버지도 반주를 즐겨 드셨다. 우리 집은 아버지 밥상을 늘 따로 보는데 그때마다 반주를 내기에 번거롭다고 생각하셨는지 술은 언제나 방 한 구석에 두시고 밥상이 나오면 반찬을 안주 삼아 한두 잔씩을 하셨으며 드신 후에는 흡족해하셨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께서 수시로 손님 접대를 위하여 집에 막걸리를 담그셨는데 이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막걸리일 경우에는 나도 아버지 밥상 옆에서 한 잔씩 먹는 행운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느지막이 보신 막내라 밥상에 겸상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너도 한번 먹어볼래.’ 하시고는 아주 조금씩 주셨다. 그때는 ‘어른이 술을 주실 때에는 반듯하게 앉아 두 손으로 잔을 받아야 한다.’ 하고 밥상머리 교육을 시키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 반주는 해도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걸리 생각을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때는 집에서 술을 담그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는 농사일도 많고 가끔 손님들도 있어 늘 술이 필요하여 어머니께서 숨겨서 술을 담그시고는 했다. 그때는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술 간수’라고 불리는 세무서원이 수시로 동네를 둘러 술을 담그는 것을 단속하고는 했다. 그래서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은 서로 통보를 하여 술독을 감춘다. 그런데 술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우리 집 술을 맛보고는 최고라고 하던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술을 좋아는 하는 편이다. 단지 약간을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많이 마시면 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그래서 자주 마시거나 과음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신 표시는 많이 낸다고 한다.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니 취해보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보통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니까 나도 못 이기는 체 술 마신 김에 한번 안 하던 짓을 해본다고 해도 될 것이다. 과하게 표시를 내는 경우는 없으며 약간 내는 것은 거의 습관이니까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이런 짧은 취흥을 5분 타임이라고 말한다.

 

음주 문화, 어떤 때는 술 먹는 날이 고역이다. 처음 한두 잔을 하고 대화를 할 때 까지는 좋다. 그러나 식사 때 반주를 하고 다시 2차, 3차를 가게 되면 그때는 고통이다. 유난히 우리나라는 술을 권하는 것이 심하다고 한다. 그런데 술 먹은 체가 아주 좋은 기회가 되는 때가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내 업무의 상급기관에서 늘 자기 과시를 많이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때 술 먹은 핑계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다한 적이 있다. 그분은 그 후 내 앞에서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물론 술을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불리한 일이 많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다.

 

오늘도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한잔 했다. 여름철이라 입맛이 없고 낮 동안에 여러 가지 일로 밥맛이 없었는데, 조금 독주로 두 잔을 마신 후 저녁을 먹었더니 훨씬 밥맛도 좋고 기분도 좋아졌다.

 

 

(사진 인터넷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