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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은퇴(隱退)에 대한 단상(斷想)

by 탁구씨 2019. 4. 30.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隱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져야 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얼굴과 말과 행동에서 연륜에 따른 인품이 묻어나고, 다음 세대에게 이런 저런 조언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앞선 세대로서 경험 한 마디쯤은 떳떳이 들려줄 수 도 있는 그런 삶이 되어야겠다는 정도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조용한 교외에 아담한 단독 주택을 짓고 햇볕 잘 드는 남향으로 서재를 배치한 다음, 편안한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무겁지 않은 사색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왔다.

수시로 가족들과 모이기도 하고 가끔은 함께 외식을 하거나 국내외로 소박한 여행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도 어울려 식사를 하거나 장기, 바둑도 두고 약간은 잡스러운 대화도 하며, 또 가끔은 함께 운동을 하거나 장난기어린 자유로움으로 세상 여행을 떠나기도 하여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은퇴를 직면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과는 괴리가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최근 들어 야단스럽게 부각되는 100세 고령화 시대, 베이비부머 세대 등이 과연 그렇게 해도 될 런지 지금이 은퇴 시점일지라도 쉽게 결정을 하기에는 망설임이 있다. 길어질 노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고, 살기 어려운 젊은 세대를 보면서 그 세대까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자연히 이제 은퇴 시점의 변경이 올 수밖에 없으므로 그동안 마음에 두고 하고 싶었던 일들이 순차적으로 보류되고 어쩌면 끝까지 그렇게 한가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 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은퇴는 명예롭고 여유롭다는 느낌이 연상되는데 실재에서는 고민이 깊어지고 마음이 더욱 분주해진다는 느낌이다.


 은퇴(隱退)를 사전적 의미로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 생산 활동은 중지했지만 지속적으로 소비는 하고 있는 삶의 형태로,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로이 보낼 수 있을까? 생산 활동을 중지하고 지속적으로 소비는 해도 되는 삶의 형태의 영위가 가능할까?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는 다르다지만 소비를 위해서는 수입이 필요하고 할 일이 필요한데 젊은이들도 직업을 못 구하고 방황하는 시대에 은퇴세대에게 주어 질 직업이 있을까?

부모를 모셔야 하고 다음 세대는 취업조차 어려우니 결혼도 힘들어지고 따라서 출산율도 급격히 떨어지니 어쩌면 부모님에 아들 손자까지, 3~4대를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 실질적인 은퇴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도 보인다.


 그러면 이제 실질적인 은퇴시점은 어디여야 될까? 이전처럼 경제적인 문제, 고령화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연령에 따른 기준이 있었다. 이런 필요에 의한 은퇴 말고도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외모나 건강상으로도 단순히 연령만으로 은퇴시기를 언급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건강상태도 좋아지고 외모나 사고도 이전시대와 비교하면 모두가 동안이고 거의 젊은 사람 수준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중년에게서 나이를 구분하기는 참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잣대는 그렇지 않다. 나이가 되면 직장에서 퇴직하여야 하고 퇴직은 곧 은퇴를 의미한다. 건강하고 경험이 풍부하며 일을 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받아줄 곳은 많지 않다.


 인생 2모작이라는 말들이 있지만 그것도 막연하다. 말 그대로 지난날의 경험을 살리고 적성에 맞는 그런 2모작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아예 은퇴 연령층을 찾는 곳은 없다. 어떻게 하여 지원서를 써들고 찾아간다고 한들 조건 없이 받아들여주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이나, 경험이나, 의지는 무시당한 체 등산이나 하면서 소일 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과연 현실적인 은퇴연령은 몇 세이어야 적당 할까? 사회일면에서는 정년연장을 운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취업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잠식하게 되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비등한다.


 결국 은퇴시점은 각자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은퇴시기가 애매하다는 것은 일반론이지 실재에서는 정년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얼마 전부터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 연금의 수령이라는 것이 이제 은퇴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이 곧 인생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사회는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연금 세대라는 것이 지금이 아닌 먼 훗날의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공돈 같은 수입이 생겼다는 반가움 이면에는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물론 지금은 별로 영향을 주고 있지 않지만 조금 더 훗날, 그때에는 연금 제도에 대한 고마움은 클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 은퇴를 하더라도 이것이 정말 인생의 은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더욱이 고령화 사회에서 창창하게 남은 시간을 생각할 때 은퇴는 그 나름의 새로운 시작이어야 하고, 다른 한 편의 현재의 계속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인생이어야 하지만 인생 2막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하여 자기 계발을 하여야 하고 일상의 계속이라고 느껴야 할 것이다. 더 오랜 세월 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제와 오늘은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