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9 구봉산 등산
겨울 등산은 참으로 어설프다.
일단, 추위를 각오해야 되며 세찬 바람이 불수도 있고, 눈이 올 수도 있으며, 이미 등산로가 얼어 미끄러울 수도 있다.
일기나 산 상태에 따른 변수가 많아 일단 방한복 등 방한장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스틱, 아이젠, 스패츠 등 각종 겨울용 등산 장구를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거기에 산 위 찬바람 속에서 먹어야 할 점심은 선택이 만만치 않다.
세찬바람이 불고 자리도 불편한 산정에서 빠르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필요하다.
홀로 가는 등산은 내키지 않으면 포기하면 되지만 여럿이 약속을 하였을 경우에는 취소할 수도 없고 그 고민이 배가 된다.
그러니 막연히 계획을 세웠더라도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면 출발이 어설프고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출발을 하고 나면 반전이 있는 것이 겨울 등산의 묘미이다.
차창을 스치는 마른 들녘이 황량하면서도 낙엽 지고 난 산이 간결하고 단정하게도 보이고 차량 안에서는 겨울 특유의 안온함이 있다.
거기에 목적지가 첫 행선지일 경우에는 산에 대한 기대가 있고 단체 산행일 경우에는 차량에서 만날 산행 동료들과의 반가움과 기대도 있다.
그리고 산을 들어서면 그 알싸한 겨울 기운과 발에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감각과 구수한 냄새 또한 정겹다.
덧붙여 눈 산행일 때에는 눈부시게 펼쳐지는 순백의 산야가 장관이고 거기에 상고대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환상이다.
눈 위를 걷는 어려움이나 추위 같은 것은 느낄 겨를이 없다. 겨울 산행이 힘 든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고 오히려 묘한 재미와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단체 산행으로 아침 7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선다.
어제 일기예보 상에는 기온이 낮을 거라고 했는데 생각 보다가는 춥지 않다.
금년 겨울은 눈이 많지 않아 제대로 된 눈 산행을 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운이 좋아 눈 산행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산행 버스에는 이미 낯익은 산우들이 많이 자리하여 반갑다.
이번 등산은 전북 진안의 구봉산이다.
몇 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산 밑에 도착하니 다른 팀들도 이미 도착하여 입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눈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사전 조사에 의하면 구봉산은 1봉에서 9봉까지 송곳 같은 암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산세가 좋고 조망이 좋은 산으로 1봉에서 8봉까지는 꽃잎들이 둘러 서 있는 듯하여 연꽃 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마지막의 9봉은 구봉산의 정상이며 1002M로 지리산, 덕유산 등 주변의 첩첩이 솟아있는 유명산을 조망할 수 있다.
산을 들입부터 가파르다. 곧 1봉에 도착했고 1봉에서 바라보이는 켜켜이 전개되는 높은 산들이 구름으로 구분지어지며 장관이다.
이어서 2봉, 3봉 4봉을 오른다. 구봉산은 가파르고 바위산이기는 하나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래도 험한 산으로 방심이나 실수는 금물이다.
4봉에는 이름처럼 전망 좋은 정자 '구름정'이 있다. '구름정'에 앉아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멀리 첩첩이 둘러선 산들이 보이고 아래로는 양명마을이 졸망졸망하게 보인다.
4봉을 지나면 5봉과 구름다리 현수교로 연결 된다.
구름다리의 인공적인 면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 다리가 없으면 봉우리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도 쉽지 않지만 또 약 700M고지라고 하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스릴도 있다.
다리 양편에는 넓직한 테라스를 만들어 식사를 하거나 산야를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정상 바람이 매섭지만 우리도 여기에서 준비해온 식사를 하였다.
산 정상에서 먹는 식사를 만찬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저 한끼 떼우는 정도의 식사이다. 그래도 땀 흘리고 정상에서 먹는 식사는 최고이다. 맞 바람에 게눈 감추듯이 한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보이는 북쪽 산이 깍아 지른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산세의 흐름이 완만하게 흐르며 장관이다. 구봉산은 바위가 많고 계단이 많다. 그만큼 가파르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계단이 없으면 일반인들은 이 산을 접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계단이라고 해도 가팔라 도중에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이제 8봉을 넘어 9봉이다. 9봉은 구봉산의 정상으로 이제까지와는 달리 급경사 구간이 길고 험하다. 일부 등산객들은 8봉을 지나 9봉 사이에서 포기하고 돈내미재 고개에서 하산을 했다.
그러나 산은 정상을 보았을 때에 그 산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을 한 다음 계속 진행을 한다. 역시 가파른 산이다. 한 시간여를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구봉산(천왕봉) 1002m라고 적혀있다.
100대 명산이라고 한다. 100대 명산을 돌고 있는 산우에게서 기념 휘장을 빌려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정상에서는 주변으로 지리산, 덕유산, 적성산, 마이산 등 유명산들과 용담댐 등이 조망된다.
하산은 돈내미재로 되돌아가는 길도 있으나 천황사 방향으로 직진하여 바랑재에서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평탄하지만 벼랑 끝으로 스릴을 느끼는 등산로를 따라 멀리 여덟 봉오리를 바라보며 걷게 된다.
험하지는 않으나 마지막 구간이 조금 가파르다.
구봉산은 전체적으로 쉬운 산은 아니다. 하산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짧은 겨울햇살이 서쪽 산정을 넘어가고 있다.
산행은 항상 경이롭다.
그냥 놀라운 감탄이 있을 뿐이다.
입산 후 오래지 않아 허벅지의 팽팽한 긴장감과 가쁜 숨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게 되고 그 끝에 찾아오는 자연의 신비 앞에 경탄이 있을 뿐이다.
일종의 묘한 중독감이기도 하다.
등산은 힘이 든다.
힘든 만큼의 엔돌핀이 솟아난다.
흘리는 땀방울 만큼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체력의 소진을 느끼며 한발 한발 밟아 오를 때 머리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도달한다.
거의 무작위로 움직이는 발걸음 후에 전개되는 자연의 장대함이 놀랍다 못해 숙연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산(정상)을 정복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등산이라는 말도 어려울 때가 있다. 그저 산행이다.
우리는 위대한 자연의 품에 잠시 안겨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넉넉한 품속에 의탁하여 희열과 쉼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구봉산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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