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물
생일이나 입학, 졸업, 명절, 성탄 등 기억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 선물을 한다. 요즘에는 물질이 흔해져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쉽게 구하고 주고받을 수 있으니 아쉬움이 없어 선물에 대한 개념이 약해진 듯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았을 때에는 즐거움이 따른다.
내가 각박하게 돌아가는 기업체 근무를 정리하고 비영리 법인의 어떤 단체로 왔을 때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선물들이 정성 들여 쓴 카드와 함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귀하고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조그마한 소품, 과자, 꽃 몇 송이, 정성 들여 만든 카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가슴이 울컥 함을 느꼈고 이 단체는 아직도 이러한 미풍이 살아있구나. 그래도 아직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있구나! 하는 조금은 무거운 생각을 하게 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자신이 각박하게 살아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선물은 그 단어에서 오는 느낌부터 참 순수하고 즐겁다. 주는 사람은 주는 사람으로서의 기쁨, 받는 사람은 받는 사람으로서의 기쁨이 있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거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가를 바라거나 도움을 준다거나 그런 목적이 동반될 때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그저 마음에 끌려 순수하게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주는 기쁨이 따른다. 선물을 준다는 것은 이미 생각할 때부터 마음이 즐거워진다. 선물을 어떤 것을 어떻게 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까? 좋아할 선물을 구상하고, 상점에서 고르고, 예쁘게 포장하고, 우편이든 배달이든 직접이든 전달하고 난 후에는 작은 성취감 같은 정말 순수한 기쁨이 온다.
받는 사람의 기쁨은 말 할 것도 없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기쁨이 앞서고 그 내용물에 대한 궁금함이 있으며 포장을 뜯고 확인하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선물은 준비하는데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고 싶기는 하지만 선택에는 상당한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선물이 상대방에 격에 맞는 것인지, 또 요긴하게 쓸 것인지, 혹시 오해는 없을 런지, 구상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구상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될 때도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카탈로그를 뒤지고 심지어 가까운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보면 필요한 시간은 다가오고 부랴부랴 백화점을 달려가지만 만족할만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 이때는 이미 그 순수성이 사라진다. 이미 의무감 같은 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마음이 가볍지 못하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관계라는 것은 의무감일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받는 사람 역시 즐거움이 반감되는 수가 있다. 선물을 보내준데 대한 고마움은 있지만 격에 맞지 않으면 형식이라는 느낌이 들고 어떤 면에서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순수하게 주고받을 때 인간관계에서의 인정과 사랑이 살아있고 즐거움과 고마움이 크다.
선물이 선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가질 때나 이권이 개입될 때 이것은 선물이 아니고 뇌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문제화되기도 한다.
선물을 가장한 뇌물, 얼마 전부터 속칭 '김영란 법'이라는 ‘부정청탁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것이 법으로 제정되었을까! 사회가 불합리해지고 각박해짐에 따른 결과이다.
그런데 사실 애매한 경우도 있다. 언제인가 아는 분으로부터 자신이 취미로 하고 있는 주말 농장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과일을 한 상자 보내온 적이 있다. 아주 굵고 품질이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업무상으로도 아는 분이다. 이것을 받아야 될까? 물론 비싼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을 나누어 먹자는 뜻이라고는 한다. 그러나 업무상 관련은 있는 분이니 그냥 받는다는 것도 이를 되돌려 보낸 다는 것도 사실 부담스러웠다. 결국 받고 그에 상응할만한 선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는 하였다.
물론 나는 부정청탁 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직업군의 대상은 아니다. 법이 있기에 한 번 더 양심으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선물이 상대방에게도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선물은 주고받는 의미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아니 의미를 찾으면 부담이 될 수도 있으니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꽃 한 송이, 직접 구운 과자 한 상자, 여행에서 돌아오다 특색이 있어서 사온 조그만 소품, 그러한 가볍고 정성이 깃든 것들이 진정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러한 선물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이 사회가 더 평화로워지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선물이 흡족치 않다고 불평할 정도의 관계라면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
내 책상 위에는 조그만 조약돌이 두 개 있다. 어느 해인가 아내가 아이들과 여름휴가를 갖다가 돌아오면서 주워 온 것들로 그야 말로 선물이다. 나는 조약돌을 글을 쓸때 눌러놓는 문진으로 쓰거나 잠시 무엇을 눌러 놓는 용도로 자주 사용한다. 또한 돌이라 TV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할 때 한손으로 만지작거리면 잡념도 없어지고 부드럽고 매끄런운 촉감 또한 좋다.
선물은 꼭 새로운 물건이어야만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신이 아끼는 것 가운데 다른 사람이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이를 선물로 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선물에는 어쩌면 추억과 스토리가 함께 전해질 수도 있다. 몇 해 전 생일에 아내가 우리 수준에는 부담이 되는 소위 명품이라는 시계를 사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기꺼이 좋다고 했다. 사 주겠다는 사람의 마음이 있었고 또한, 나도 가지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으며 나는 이를 사용하다가 -지금도 차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싫증이 나면 내 가까운 이들에게 줄 예정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추억과 스토리가 함께 선물된다.
선물을 이야기하면 ‘오헨리’의 감독적인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가난하지만 매우 사랑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진 돈이 부족하다. 짐은 물려받은 시계가 있고 델라는 멋진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짐은 시계 줄이 낡아 차지를 못하고 델라는 멋진 갈색머리에 머리띠가 없는 것이 서로의 안타까움이다. 이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짐은 시계를 팔아서 델라의 머리띠를 샀고 델라는 머리카락을 잘라 짐의 시계 줄을 샀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내어 놓았지만 이제 당장은 서로에게는 필요 없는 선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말 순수하고 따뜻한 선물이 따른다. 서로의 진실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선물한 것이다.
(2018.12. 27 / 20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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