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 창문 밖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있다.
나는 하루 중 점심 식사 후에 잠간 눈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
오늘도 살짝 눈을 붙였다가 깨니 노란 잎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매일 두고 보던 나무들인데 지나쳐 보다 보니 불과 몇 미터 거리의 나무가 어느덧 이렇게 단풍이 들어 있다.
사람의 무관심이란 이렇게 놀랍다.
엊그제 연한 새잎이 돋아나는 것은 본 것 같은데 어느새 녹음이 지고, 그리고 단풍이 든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곧 저 잎들이 떨어져 담장위로 쌓일 것이다.
나무는 잎이 돋을 때는 돋는 대로, 녹음이면 녹음대로, 또 지금과 같이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면 또 그대로의 보는 느낌이 항상 새롭다.
낙엽이 지면 앙상하기에 을씨년스럽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현상도 그 자체로 좋아한다.
낙엽이 지고 나면 무성한 나뭇잎에서 오는 복잡하고 음습한 기운이 사라진다.
단정한 가지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흔히 말하는 나목(裸木)이 된다.
나무 줄기 본래의 수형을 볼 수가 있으며 껍질에서 오는 나무 고유의 질감도 느낄 수 있다.
자작나무는 줄기가 희고 부드러우며, 갈참나무는 투박하나 거칠지 않고, 단풍나무는 가늘지만 약하지 않다.
흔히 보이는 은행나무 또한 수형이 곧고 목질이 단단하게 보여 잎이 없어도 그 나름의 멋을 느낄 수가 있다.
많은 나무들이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나무 자체뿐만아니라 깊은 산중 계곡은 잎이 완전히 진 후에라야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은 잎이 완전히 떨어지고 그 낙엽까지도 거친 후에라야 시리도록 투명한 모습이 그 바닥과 함께 제대로 나타난다.
그 어느 것이나 인공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살아있는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다.
낙엽이 지고나면 그동안 가리고 있던 온갖 군더더기들이 사라져 자연이 가지고 있는 담백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인생도 곁가지들을 없애야 담백하다.
온갖 욕심과 걱정, 복잡한 관계를 탈피할 때에 우리의 가슴은 상쾌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며 눈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구도자나 종교적인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소박하고 간소한 삶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그 순간순간을 비우고 정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물건과 욕심과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걱정거리에 짓눌려 산다.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 놓는 불편을 버리고, 발생하지도 않을 걱정을 앞당겨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부담을 느껴서는 안된다.
낙엽이 떨어져 또 한 단락을 정리하듯이 우리도 순간순간을 정리하여 인생을 홀가분히 간소화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이 담백한 삶이다. (2018.10.28)
(아파트 단지내의 낙엽)
'수필 & 긴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 물 (0) | 2018.12.27 |
---|---|
나는 있고 우리는 없는 사회 (0) | 2018.11.19 |
독서 한담 Ⅱ (讀書 閑談 Ⅱ) (0) | 2018.10.24 |
영암 아리랑의 월출산을 산행하다 (0) | 2018.10.03 |
아내의 선물 / 책상 (0) | 2018.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