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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바우상상의 용암리 와 雲行雨施

by 탁구씨 2010. 12. 8.

내 블러그 네임 '바우상상'의 근원, 내 고향 용암리(용바우)


마을 이름 '용바우'의 유래가 된 용바위

용바위 중간 높이에는 난해하게 글이 각인 되어 있는데 '雲行雨施(운행우시)'라고 한다.

이는 주역에 나오는 문구로 "구름이 움직이니 시원하게 비가 뿌린다"라는 뜻이다.

이는'시대적 요구에 순응하며 자기변화를 시도하면

매사가 순리적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내 나름대로 풀이 한다.

이 바위는 용의 머리라고도 하고 옆으로 개울에 걸쳐져 있으며 개울바닥에서 몸체가

보이는 여부에 따라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흥망이 달라진다는 재밌는 얘기가 있었던 듯

하다. 용바위의 여름 모습은 아래 사진이다.


용바위의 주위 환경및 여름 전경.

예전에는 도로에서 4-5m 높이였고 지금도 위 표면 면적은 수십평은 됨직한 큰 바위이다.

몇년 전 도로가 확장 되면서 높이가 낮아졌다.

어릴때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밑에서 맴돈적도 있고 점차 올라가게 되면서 자신이

크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게 해주는 바위였다.

요즘도 나는 이곳을 들리면 꼭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꼿꼿이 앉아 들판을 내려다 보거나

큰대자로 크게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릴때의 기개가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곧 바우상상이 꿈틀된다.

이 또한 내가 고향을 자주 찾는 이유중의 하나이다.측면의 글씨는 위 사진의 '雲行雨施'


동구에 두개의 커다란 바위가 마주 보고 있어 우리는 어린 시절 건너뛰어 건넌다고

건너방구라고 불렀다. 바위옆 여러 면에는 커다란 한자 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요즘에는 이끼가 덮혀 잘 읽을 수는 없으나 한곳은 龍臥花岩(용와화암)이라고 적혀있으며

이는 1900년대초 지방의 거부 김규수의 글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마주하고 있는 바위는 끝이 칼날같이 날카롭다고 하여 칼방구다.   


 

 건너방구를 여름에 반대편에서 찍은 모습이다. 물론 도로가 확장 되는 바람에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바위의 위치도 변경되고 높이도 낮아 졌으며 무었보다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느티 나무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더하여 아쉬운 것은 요즘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이끼와 풀이 덮혀 그 옛날 수십명씩 모여 놀던 정겹던 놀이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건너방구 옆 개울, 여름 철에는 물이 흘러 우리 개구장이들의 목욕 장소다.

물을 이리저리 나뭇가지와 모래로 막아 웅덩이를 만들고 그 속에서 하루종일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보면 입술이 파래진다. 

입술이 파래지면 옆의 큰바위에 기어 올라가 몸을 말린다. 반면 바위는 여름 햇살에

달구어져 뜨겁기도 하지만 우리는 살금 살금 기어 다니며 몸을 말렸고 바닥에 보이는

넓적 바위는 그 위로 물이 흘러 우리들의 물 썰매장이 된다.

몇년전 여름에 폭우로 개울이 조금 넓어졌다. 우리가 어릴때는 이렇게 넓지 않았다.

물론 그때 느낌으로는 오히려 이보다 훨씬 넓었던 기억이 있다.


개울가의 우리가 가장 자주 물놀이를 하던 특징 있는 바위가 위 글에서 빠졌다.

 

 

김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