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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한통의 편지(2004.9.11) 회상

by 탁구씨 2010. 8. 7.

 

                                                                                      <사진:두물머리에서>

정말 오랜만에 편지 한통을 받았다.

많이들 이야기 하지만, 요즘은 흔한 전화 인터넷에 밀려 편지를 써 본지도 받아 본지도 오래 되었다.

왠지 신선한 감과 함께 묘한 정감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 놈의 편지를 받으면서 또 어떤 익살을 떨고 엉뚱한 소리를 할까 하고 호기심과 함께 약간은 긴장감도 들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내 고등학교의 친구다.

집안이 나름대로는 좋아 고교시절 별 어려움 없이 지냈고 또한 선천적으로 성격이 낙천적이며 부드럽고 유머가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도 무척 많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정서적으로 통하는 구석이 있어 꽤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놈은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 취직을 하였으며 야간에는 모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했는데 우연찮게 밤에 거기서 또 만났다.

 

중요한 것은 이놈의 성격이 유별나게 낙천적이며 마음이 좋다는 것이다.

그가 화를 내거나 누구를 비판하거나 하는 것을 아직껏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런데 그놈에게 일이 생겼다.  얼마 전 명퇴를 당한 것이다.

금융기관이 그래도 사회적 인식도 좋고 보수나 신분도 안정적이었기에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아마 회사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자진하여 사표를 쓴 것 같다.

사회를 잘 몰랐다거나,  경기가 요즘처럼 악화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이놈은 사직후 엄청난 고생을 했다. 후배와 장사를 시작했다가 망하고 식당을 개업했다가 또 말아 먹고,

가족은 처갓집으로, 본가로, 뿔뿔이 흩어지고,

집을 팔았으니 가구는 둘 곳이 없어 또 다른 내친구집 정원에 쌓아놓았는데 여름 장마에 다 썩었다.

정말 이놈에게, 다른 놈도 아닌 이런 선량한 놈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이 세상을 관리하는 존재가 있다면 너무 장난이 심하다고 내가 화를 내 본적도 여러 번이다. 

여기까지가 내 친구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어떻게 잘 지내냐고.... 전화로 하려니 너무 약삭 빠르게만 사는 것 같아 일부러 편지를 쓴다고…….

지금은 후배가 경영하는 무역회사에 경리책임자로 취직을 하여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운이 좋은 놈이냐고…….

그리고 세상을 성실히 진실히 열심히! 그리고 고민하지 말고 즐겁게 살자고......]

 

나는 정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어께에 힘이 빠짐을 느꼈고 할 말을 잃었다.

이놈도 이런 말을 하는데 우리는, 나는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난 아직도 이 친구에게 답장을 못 쓰고 있다. 아니 쓸 용기가 없다. 며칠이 지났지만 난 그 편지를 침대 옆에 던져놓고 있다. 

아내는 무슨 편지인데 그러냐고, 그 친구 편지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을 텐데.... 답장은 써줬냐고..묻는다.

그래. 야, 이 친구 야!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통제를 하고 있단다. 그 손이 장난이 좀 심하지.

그러나 장난은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 너에겐 반드시 보답이 올 거야, 아니 있어야 돼.

내 곧 답장 써줄게.

아침 출근길 차창을 스치는 산산한 바람이 느낌이 좋아 문득 이친구가 떠오르면서 이렇게 생각나는 되로 자판을 두드려 본다.

(2004. 9. 10) 

  

오래된 글이다.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런데 지금 이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또 너무 무심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