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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바우상상-풋굿 (호미씻이, 百中 : 세시풍속) 회상

by 탁구씨 2010. 8. 17.

오늘은 더위가 한풀 꺽인듯 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에 바람결이 느껴진다. 나뭇끝이 가볍게 살랑되고 매미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그래 이제부터는 약간은 무덥고 햇살이 따가운 늦여름 날씨가 시작 될 거다.

그리고 한 열흘은 매미소리가 지독히도 요란스럽게 들릴 것이다.

친 환경 정책으로 생태계가 살아 난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 나빠지면서 매미도 삶에 적응하느라 독해진 것인지

어떤 때에는 어릴 때 듣던 그 정감 있고 여유 있는 매미소리가 아니다.

그냥 귓청을 찢는듯한 찢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동네의 풋굿나무>

이런 여름날이면 어릴 때의 풋굿이 생각난다.

아담한 농촌 마을, 평범한 시골이라 들이 넓지 않은 단점도 있지만 산세가 얕으막하게 순하고

토질이 비옥하며 물이 좋아 그냥대로 농민들이 허기는 지지 않고 살만한 동네이기에 동네 인심은 참 좋았던 것 같다.

지나가던 방물장수나 나그네가 있으면 약간의 주저 끝에 그냥 보내는 법은 없이 꽁 보리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건넛방에 재워서 보내기도 하는 인심이다.

 

우리 동네에 음력 7월, 요즘이면 동네잔치가 있다.

다락 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논 농사를 짓는 마을로 이 철이 이제 논매기까지가 끝나고(두벌 김매기 까지)

거의 추수전 까지는 일단 힘든 일이 없는 시기이다.

이 날은 이틀 정도 쉬며 놀이판을 벌이는 데

첫날은 집집이 그저 성의껏 술이나, 손국수, 보리밥, 애호박에 풋고추를 숭숭 넣고 부친 전, 맨드라미를 따서 부친 전,

생도라지 등을 뭍인 나물 등의 안주와

또 형편이 되는 대로의 각종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풋굿나무라고 불리는 동네어귀의 느티나무 밑으로 가지고와

채알(천막)을 치고 어른 아이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허물없이 놀며

그동안의 고된 농사일의 노고를 달래고 동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며 또 남은 추수기의 풍작을 기원 한다.

 

                                                                        <우리 집>

그리고 이튼날은 풍물패를 만들어 집집마다 찾아가 마당을 돌고, 부엌으로 들어가 지신을 밟기도 하며 놀이판을 벌린다.

그 집의 액을 떼우고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그러면 주인이 정성스레 먹을 것을 준비하고 풍물패는 이를 마당 복판에 차려놓고 신명을 지핀다.

가난한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은 조금은 여유 있는 편이라 각별히 음식도 조금 넉넉하게 준비하고

그래서인지 풍물패들은 신나게 오래 놀다가 가는 편이며 어머니는 이것이 더욱 흥이나 분주하게 준비를 하던 것이 생각나고

나 역시 은근히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마을은 산중의 조그만 동네로 우리 집은 동네에서 벼농사 백석단위를 넘길수 있는 몇 안 되는 집에 속했던 것 같다.

 

이 풋굿 때가 되면 동네 사람들은 조금은 홀가분하고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먼저 며칠전 모두 모여

그동안 바쁜 일로 미루어 두었던 동네청소나 마을길 보수, 마을의 농기구나 풍물등 공용기구의 손질을 하고,

각 가정에서는 음식 준비에 부산하다.

나도 그때에는 전을 부칠 때 쓸 맨드라미를 따거나 애호박을 따고 쌈을 싸기에 좋은 여린 호박잎을 따기도 하며 덩달아 바쁘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동네 주민들이 마을 청소를 할때 나는 집 마당의 화단을 정리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막 나팔꽃, 무궁화꽃, 철이른 해바라기 꽃도 피고, 그때 울타리 밑에 무리지어 있던 접시꽃이 만개하였었던 것 같다.

이 화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있다.

그리고 음식준비가 다 되면 그중 일부를 들고 어머니를 도와 동네 입구의 풋굿나무밑 잔치 장소로 간다.

우리 집은 여자애가 없어 막내인 내가 이런 심부름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여름날 습기를 머금은 풋풋한 냄새가 풍겨 오면 간혹 오늘처럼 나는 그시절을 생각 한다. 

 

                                                                  <동네입구 길>

 사전에서 풋굿, 백중을 찾아보니

1. 호미씻이(풋굿) : 음력 7월에 행해지던 농민들의 제축행사.

풋굿·초연·머슴날·농부날이라고도 한다. 한 해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인 세벌김매기가 끝난 직후인 7월 칠석이나

7월 보름 백중에는 농민들이 농사일의 노고를 달래면서 놀이판을 벌인다.

두레농사를 결산하면서 땅 주인들은 농군들의 노고를 위로할 겸 돈을 내어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풍물꾼들은 집집마다 풍물을 치고 다니면서 무동을 태우고 하루를 즐겁게 논다.

백중에 호미씻이를 하는 지역에서는 인근 시장에서 열리는 백중 씨름난장에 놀러가라고 주인이 머슴들에게 돈과 새옷을 해주었다.

호미씻이라는 말은 한 해 농사 끝에 흙 묻은 호미를 씻어둔다는 뜻으로 힘든 농사가 다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날 두레패의 농기를 마을에 세워두고 베레줄에 호미를 주렁주렁 매달아두는 지역도 있는데

이런 지역에서는 호미를 걸어둔다는 뜻으로 '호미걸이'라고도 부른다.

호미씻이는 농민들이 휴한기에 벌이는 농민들만의 제축으로서 1년 중 가장 큰 명절의 하나였으나 두레가 소멸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2.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

백종(百種)·중원(中元)·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이때쯤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와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놓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절에서는 재(齋)를 올리고 공양을 드렸으며,

민간에서는 100가지의 과실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남녀가 모여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가정에서는 한창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차례를 올리고 백중잔치를 한다.

백중을 전후로 장이 섰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는 일손을 쉬고 머슴에게는 휴가와 돈을 주어

백중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도록 했다.

백중장이 성시를 이루면 씨름판과 장치기 등의 놀이도 펼쳐진다.

또한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을 소나 가마에 태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북돋아준다.

백중 때가 되면 농사일이 거의 끝나서 농부들은 호미를 씻어두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한다.

 

 

 

김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