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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휴일한담 [2005.9.25] 회상

by 탁구씨 2010. 7. 15.

 

                                              <책상에서 내려다보는 단지내 공원>

오랫만에 새벽미사를 보고 책상에 앉았다.

아침햇살이 찬란히 등뒤에서 비추고 있다.  

난 이 시간, 이 자리를 참 좋아 한다. 

일어나기 싫은 새벽이지만 겨우라도 눈을 뜨고 조용히 새벽미사를 마친 다음,

돌아와 창가에 앉으면 가슴에 뭔가 모를 차분하면서도 긍정적인 느낌이 전해온다.

책상을 아침 햇살이 잘 들면서도 아파트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이 자리로 

옮기고나서 부터는 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만큼은 게으름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질수 있는 시간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 앉으면 아내는 커피 한잔과 직접 구운 약간의 과자를 마련 해 온다. 

하기는 책상을 이 자리로 옮기기 전에도 우리는 가끔 차탁을 이곳에 놓고

계절과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단지내 공원풍경을 내려다 보고는 했다. 

봄에는 파릇한 새싹과 연이어 만개하는 목련과 벛꽃을....,

여름에는 녹음과 쏟아지는 비,  가을에는 단풍과 샛노란 은행나무 길, 

특히 겨울에는 내리는 흰눈을 바라보거나 밤새 쌓인 눈밭을 바라보노라면

상당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는 낡은 이 집을 십수년이 훨씬 넘게 살고 있다.

사실은 게을러서 이사를 못한 확율이 제일 많지만,

이젠 정이 들어서 이기도 하고 의식적으로도 도회생활에서 

이런 정겨운 풍경을 항상 바라보고 살수 있는 환경도 많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가능한 감사를 느끼며 살려고 한다.

아내나  아이들도 이집을 떠난다는 것에는 펄쩍 뛰며 반대를 한다.

 -이곳에서 자라 이곳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탓도 있지만-

특히 아이들은 둘레가 두어아름이나 되는 정원의 나무숲과 주변의 교통,

그리고 문화적 환경을 매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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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입시철이 한발씩 다가오면서 우리집도 꽤 심각하다.

둘째놈의 입시관계로 아내와 둘째놈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는 애써 모르는척 하는 편이다.

지난날 우리가 다음세대에는 없어질 것으로 알았던 두가지가 있다.

입시와 군대이다.

우리는 '훗날 우리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도 이런것이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는 중학교 입학부터 입시를 봤다.

나는 국민하교 4학년부터 좋은 중학을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했어야 했으며

중학, 고등, 대학, 직장까지 오로지 시험의 연속이었고 군대도 갔다 왔다.

그런데 아직도 역시 아직도 있다.

 

아들 녀석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능력껏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놈이 공부를 대단히 잘하는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아들을 믿어 본다.

약간 불안하다면 이놈이 너무 마음이 약해서 중간에 잠깐씩 흔들리거나

시험때 침착성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차분히 실력껏 욕심 부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누구를 위해 자주 기도하는편은 아니지만 오늘 새벽미사에서 기도를 올린다. 

 

님! 아들녀석에게 정도이상의 행운을 달라고 기도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놈이 시험을 칠때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최선을 다 할수 있게 해주시며,

그와 아내 우리가족이 신경쓴 만큼에다 님의 은총을 조금만 보태 주십시요.

그리하여 이놈이 세상을 좀더 바르고 당당하게 살아 나갈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시고

성당에도 좀더 열심히 나가 믿음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을 갖게 해주십시요.

 

이제 주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해 졌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모두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들어가 부족한 새벽잠을 조금 보충해야 겠다.

일요일은 항상 부담이 있으면서도 느긋하고, 할일이 없으면서도 무척 바쁜 날이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면서도 무척 바쁘고 보람찬 일들이 매우 많기를 기대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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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오늘 여름날, 일을 시작하기 전

문득 이 글을 발견하고 다시 되돌아 보며 옮겨 본다.

그때 그 아이는 벌써 군을 제대하고 대학에 재학 중이다. 모든 것은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