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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친구의 편지 한통..

by 탁구씨 2005. 5. 25.

정말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요즘은 흔한 전화, 인터넷에 밀려 편지를 써 본지도 받아 본지도 오래되었다.
왠지 신선한 감과 함께 묘한 정감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 친구의 편지를 받으면서 또 어떤 익살을 떨고 엉뚱한 소리를 할까 하고 호기심과 함께 약간은 긴장감도 들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내 고등학교의 친구다. 아버지가 교직에 계셨고 집안이 나름대로 좋아 고교 시절 별 어려움 없이 지내고 또한 선천적으로 성격이 낙천적이며 부드럽고 유머가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도 무척 많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정서적으로 통하는 구석이 있어 꽤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 취직하였으며 야간에 모 대학에 진학, 공부했는데 우연히 밤에 거기서 또 만났다.
중요한 것은 이 친구의 성격이 유별나게 낙천적이며 성격이 좋다는 것이다. 그가 화를 내거나 누구를 비판하거나 하는 것을 아직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일이 생겼다.
얼마 전 명퇴를 당한 것이다. 성격 좋은 그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아마 회사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자진하여 사표를 쓴 것 같다. 사회를 잘 몰랐다거나 경기가 요즘처럼 악화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이 친구는 사직 후 엄청난 고생을 했다. 후배와 장사를 시작했다가 망하고 식당을 개업했다가 또 말아 먹고, 가족은 처가로 본가로 뿔뿔이 흩어지고 집을 팔았으니 가구는 둘 곳이 없어 지인의 노는 땅에 쌓아놓았는데 여름 장마에 다 썩었다.
정말 이 친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이런 선량한 친구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이 세상을 통제하는 보이지않는 존재가 있다면 너무 장난이 심하다고 내가 화를 내 본적도 여러 번이다. 여기까지가 내 친구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어떻게 잘 지내냐고, 
전화로 하려니 너무 약삭빠르게만 사는 것 같아 일부러 편지를 쓴다고, 지금은 후배가 경영하는 무역회사에 경리책임자로 취직을 하여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운이 좋은 놈이냐고……, 그리고 세상을 성실히 진실히 열심히! 그리고 고민하지 말고 즐겁게 살자고……,]

난 정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어깨가 축 처짐을 느꼈고 할 말을 잃었다.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난 아직도 이 친구에게 답장을 못 쓰고 있다. 아니 쓸 용기가 없다. 며칠이 지났지만 난 그 편지를 침대 옆에 던져놓고 있다. 아내는 무슨 편지인데 그러냐고, 그 친구 편지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을 텐데……, 답장은 써줬냐고…...,

그래. 야, 이 친구야!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통제하고 있단다. 그 손이 장난이 좀 심하지. 그러나 장난은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 너에겐 반드시 보답이 올 거야, 아니 있어야 해.
내 곧 답장 써 줄께.
아침 출근길 차창을 스치는 산산한 바람이 느낌이 좋아 문득 이 친구가 떠오르면서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려 본다. (재명이의 편지를 받고 2004. 9. 10)

출처 : 부중18동기회
글쓴이 : 바우김(탁기)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