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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어떤 친구의 집

by 탁구씨 2005. 5. 26.

몇 일전 어떤 친구 집을 가자는 연락을 받고 정말 반가웠다. 우선은 그놈이 너무나 순수한 놈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갈려는 곳이 정말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정감어린 시골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뒤로는 아담한 동산이 반달형으로 울타리를 치고, 앞으로는 들판과 높고 낮은 산이 펼쳐진 정말 좋은 터이며, 그곳에 그는 오래된 구옥을 구입하여 살기 좋게 수리하고, 마당에는 연못을 파고 나무, 돌, 화초 따위를 손수조경을 하였다.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저녁이었는데 집전 체를 환하게 등을 밝히고, 마당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이 친구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역시 그 특유의 조용함과 부드러움과 겸손함으로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으며, 도착과 동시에 그는 시장할 것이라며 가마솥 앞으로 데려갔다. 그 가마솥에는 시골에서 키운 진짜 재래종 닭에다가 꿩, 그리고 오갈피, 엄나무 등 온갖 약재를 넣어, 그것도 우리가 닭은 잡지 못한다고 하였더니 멀리 서울에서 동생을 일부러 불러다가 잡아서 끓이고 있었다.

 

우선 술을 준비하기 전에 시장을 면하자며 토종닭똥집과 기타내장을 숯불에 얹어 구우니, 조용한 시골분위기와 가마솥과 장작불과 닭똥집 그것은 신선놀음이었다. 이 친구 그동안 마당구석에 모닥불을 피웠는데 그것은 캠 파이어가 아니라 땅속에 묻어놓은 약술을 꺼내기 위해 땅표면을 녹이기 위해서다. 우리는 함께 달려들어 땅을 파고 독을 꺼내니 향기가 진동을 한다. 그것은 오래전에 오갈피 당귀 대추 등등 온갖 약재를 첨가하여 담근 술로 술이라기보다는 약이다. 우리는 의기 충전하여 술독채 가마솥 앞으로 옮겨놓고 몇 마리의 닭과 꿩을 되는대로 뜯어 안주로 벌려놓은 다음, 잔에 술을 가득 담아 살짝 냄새를 맡고 입으로 삼키니 그 맛과 분위는 신선이지 우리세상이 아니다.

 

함께 갔던, 평소 술을 두려워하던 한 친구. 그도 망설임도 없이 연거푸 건배를 부르니, 우리는 몸보다 마음과 우정에 취하여 찬바람도 내일에 할 일도 잊었다. 우리는 정말 친구 좋고 분위기 좋고 술좋고 안주 좋고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못 먹겠다고 빼는 놈이 없을 정도로 서로 분위기를 즐기며 먹고 마셨고, 드디어 장소를 집안으로 옮겨 정말 허물없이 웃고 욕하고 떠들며 서로를 또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일까. 아니 우리친구들의 진짜모습이 전부 이렇다.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친구들이 좋다. 이해타산, 뭐 그런 것은 딴 나라 이야기다. 우리는 드디어 골아 떨어졌고 새벽 한 친구의 어쩔 수 없는 일정으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 그의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 왔다. 그도 나도 그 이튿날은 사무실에 꽤 중요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친구에게 고마웠다는 전화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사심 없이 천성으로 준비해준 그 친구에게 간다는 소리도 못하고 도망치듯이 떠나 온 것이 상당히 미안하다. 아침으로 닭죽도 준비해놓고 또 다른 계획도 들었으며 정원의 오갈피 약재도 가져가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밤새 허물없이 떠들어 됐던 우정 어린 이야기들을 기억해보며 정말 흐뭇하고, 잠시지만 나도 모르게 했던 몇 가지 이야기들은 멋쩍음도 든다. 그래 친구들아 이제 나이 들어가며 자주 만나고 좋은 자리들을 만들어 보자. 다음엔 내가 만들어 보아야겠다.(사무실에서 쓰니 오락가락한다.)

 

출처 : 부중18동기회

글쓴이 : 바우김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