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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북한산에서 소리 한 자락(2004. 6. 13일)

by 탁구씨 2005. 5. 25.

오늘 북한산을 올랐다. 태양은 뜨거웠고 힘은 들었지만 발밑만을 바라보며 한발 한발---. 무념무상의 세계다. 등산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지만, 그저 습관적으로 어쩌면 맑은 공기와 무념의 세계와(힘이 들기 때문에) 정상에서의 성취감에 취해 오르다보니 중독수준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오르지 않으면 그다음 한주가 매우 지겹고 뻐근함을 느낀다.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요즘같이 답답한 세상에 마음을 정화하고, 또 새로운 용기를 재충전시켜 주는 것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오늘은 정릉 청수장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전철로 성신여대 앞까지 와서 1번 버스로 갈아탄 다음 10여 분, 산밑 매표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평소 소리동호회 회원들과 북한산을 자주 찾는 문형이냐 생각나 혹시나 하여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구기동 능선을 막 들어서고 있단다. 우리는 비봉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청수장을 출발, 계곡을 끼고 잗다듬어진 등산로로 40여 분을 오르자 보국문에 도착했고 이를 통과 산성을 넘어섰다. 날씨는 따가웠지만 그래도 간혹 부는 산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여기서 목표가 비 봉이었기에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산성을 따라 걷기도 하고 따가운 태양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30여 분 후 대성문에 다다랐다. 여기서 잠시 경치를 감상하고 오이 하나로 목을 추긴 다음 동행을 계속하여 다시 30여 분 후 대남문까지 가 문루에 올라섰다. 대남문은 특유의 지형 탓으로 산밑에서 찬바람이 계곡을 휘감아 올라온다. 그냉기는 거의 냉동고 수준이다. 여기에서 땀을 다 씻어 보냈다.

이어서 비복을 가자면 문수봉을 올라야 하고, 거기에 북한산 등산의 참 묘미가 있을 수 있으나 오늘은 컨디션상 영 자신이 없어 우회하기로 했다. 문수봉을 돌아 "청수동 암문"을 통해 성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여기서 한동안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다시 가파른 암반을 올라 40여 분 뒤 승가봉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문형 이를 만나기로 했으나 찾지 못하여(전화는 불통 지역) 우리끼리 식사를 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 정상에서의 식사 기분은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산에서 느끼는 최고의 기분 중에 이것이 하나일 수도 있다. 특히 오늘은 서울 막걸리 한 사발과 풋고추가 일품이었다.

식사 중 문형 이와 연락이 닿아 비봉밑에서 합류했다. 조문형! 그는 역시 우리 친구들 중에 괴짜(?)다. 사람 좋은 것은 제쳐 두고라도 오늘 같은 날 북한산 능선의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천하를 향해 한 가닥 소리를 뽑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호회 회원들과 마음을 맟추어 뽑아내는 가락에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한참을 쉰 후 함께 하산했다.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으니 2차로 함께 호프라도 한잔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각자 동행이 있었기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우선은 헤어졌다.

구기동에 도착하니 오후 4-5시, 오늘은 동행이 조금 길었다. 9시에 집을 나갔으니 8시간 이상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여 한숨을 자고 부랴부랴 성당을 다녀온 다음, 늦은 저녁을 먹고 이 글을 써본다. (2004. 6. 13.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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