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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가난하고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

by 탁구씨 2020. 2. 9.

가난하고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

 

 

 사회 초년생으로 똥오줌을 못 가리는 아들이 퇴근하면서 껌과 과자를 탁자위에 내어 놓았다. 갑자기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지하철 입구에서 샀는데 거스름돈을 안 주잖아요.” 하고 마음이 좀 상한 듯이 제방으로 들어갔다.

겨우 털어 놓은 내용은 이러했다.

퇴근하면서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데 추위에 떨며 약간의 물건을 펼쳐놓고 팔고 있는 분이 있었다. 제 딴에는 팔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껌과 과자를 들고 돈을 주었는데 그 분은 거스름돈이 없다며 돌려 줄 생각을 안 하더란다.

마음이 상한 그는 그러면 안사겠다고 하니, 그제야 거스름돈을 세는 것을 보고 거스름 돈 대신 물건을 하나씩 더 가지고 왔단다.

 

 내가 “그런 경우이면 그냥 있는 대로 약간의 돈을 주고 오지 필요도 없는 물건을 뭐 하러 받아 왔느냐”고 하자,

아들 하는 말이 “동정하면 안돼요. 그분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고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는 정당하게 사 주어야 해요” 라고 말한다.

내가 한방 먹은 기분이다.

그래!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그저 잔돈 몇 푼을 주며 선심 쓰듯이 ‘물건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인 아들에게 한방 먹은 기분으로 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는 이 외에도 비슷한 일이 많다. 단순히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아직은 혈기 넘치고 순수한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유니세프 등 구호기관에 정기적으로 회비를 보내고, 헌혈을 하며, 전철역 입구에서 파는 ‘빅이슈’ 잡지를 꼭 사 준다.

그가 하는 일이 읽을 책이 홍수를 이루는 직업이니 ‘빅이슈’ 가 아름다운 내용의 이야기들이기는 하더라도 읽기 위한 것이 아님을 나는 안다. ‘빅이슈’는 홈리스나 소외된 사람들, 불우한 사람들의 자립을 도와주기 위하여 발행되는 가두판매 생활 잡지이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타인을 배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 이야기가 아닌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언제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전철을 탔는데 마침 도움을 청하는 사연을 빼꼭히 적은 쪽지를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지나가는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열차 끝 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서 그 쪽지를 회수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쪽지를 못 본 척하며 의식적으로 밀어 내 놓거나 마치 만지면 안 되는 것 인양 대하고는 했다.

그때 한 청년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릎에 있던 쪽지와 함께 저 멀리 바닥에 떨어진 쪽지 까지를 챙겨 기다리다가 회수하러 오자 정중히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뒤에는 지폐 한 장이 살짝 붙어 있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려 태연히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정책적인 영향인지, 실제 사정이 좀 좋아 졌는지,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히 줄어든 것처럼 보여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저녁 늦은 시간이나 이른 아침의 전철역에는 노숙자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주변에 있는 무료 급식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분들이겠지만 요즘 세상에 일부는 근로 의욕을 상실하여 습성화 된 분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우리나라가 최근에 사회복지에 쏟는 구호들을 보면 엄청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은 분명 많이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저들은 어렵게 살고 있고, 우리는 저들을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수시로 화장지를 팔아달라고 오는 다리에 장애를 가진 분이 있다. 늘 장애인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들의 생계와 자립의욕을 봐서라도 팔아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선의로 사 주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물건 보다가는 품질이 떨어지고 값은 좀 비싼 편이다. 그러나 우리도 필요한 물건이고 각별히 도움을 준다는 명분도 있으므로 팔아주고는 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습관적이 되고, 가끔은 강매에 가까울 정도로 사정을 하므로 약간의 거부감이 생겼다. 어떤 때는 이들이 정말 장애인 작업장에서 나오는 것인지 의심이 갈 때도 있다. 이들은 요즘도 오지만 역시 의구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명절이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주변에서 청소 등의 어려운 일을 한다는 분들이 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들어 주었지만 작년부터는 매정하게 거절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어려운 일을 하는 분들은 그런 동정을 요청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이 큰 실수를 한 경우도 있다. 언제인가 우리 사무실로 중년의 한 남성이 '집이 지방인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까지 갈 차비를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가끔 듣던 비슷한 이야기이기에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까지 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주 약간의 돈을 준적이 있다. 당연히 주면서 속으로는 ‘어디에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속아는 주지만 정말 나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두어 달이 지난 후의 일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분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몰라 봤다. 그분은 그때의 사정을 설명하고 돈이라면 안 받을지 몰라 그 돈 대신 가지고 왔다고 하며 과자류를 내어 놓았다. 사정을 듣지는 안았지만 정말 그랬다면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미안한 일이다.

 

 사실 이 분에게 그리 쉽게 차비를 주게 된 동기가 있다. 그 얼마 전에 이웃의 어떤 학생이 교육의 일환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겨 경비가 부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상황이라 현지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경비를 마련해야 했는데, 어떤 때는 부탁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고 외면을 하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절박한 순간에 이외의 어떤 분이 격려와 함께 약간의 돈과 식사까지 주어서 감격 하였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 사람의 어머니에게서 들었고 그 부모님은 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후 감동하여 선물을 준비하여 멀리 그 분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오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불과 오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에서 든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어쩌면 나에게도 정말 절박하여 찾아온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는 가능하면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힌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도 오래가지는 못하고 있다. 주위에서 별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없었지만 스스로 도와 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다.

주변에 무료급식소가 있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언제나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고, 연말에 구세군 자선냄비에 익명의 독지가가 매년 커다란 거금을 투척한다는 뉴스를 듣기도 했지만 나는 거금은커녕 그 구세군 냄비를 찾아간 적이 거의 없다. 언제인가도 멀리서 보았지만 안하던 짓이라 쑥스러워 약간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섰다.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계속 상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씩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어려운 사람은 수적으로도 줄어들 것이고 질적으로도 무게가 가벼워 질 것이다.

배려도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인격적 배려여야 한다.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 배려를 받는 사람도 좀 더 당당할 수 있고 재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 초년생 아들의 이야기 ‘물건을 사줄 것을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잔돈을 던져주기보다는 팔아주어야 한다,’ 는 이야기가 상당히 울림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