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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템플스테이

by 탁구씨 2017. 8. 24.

템플스테이

 

한번쯤 그 어떤 구속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자연을 벗하며 깨끗하면서도 사람의 손을 덜 탄 곳에서, 특별히 할 일도 신경 쓸 일도 주위를 의식할 필요도 없는 조금은 게으른 그런 시간 말이다. 오로지 조용히 자신만을 돌아보거나, 자연 속을 거닐거나, 멀거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누워 뒹굴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 이런 저런

생각조차 없어도 되는 그런 시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템플스테이를 생각했다. 사찰도 나름의 규칙이 있겠지만 그건 사찰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 생각하면 양념일 것이다. 아니 산중 생활에 대하여도 문득 문득 궁금함이 있었고 그리고 한번쯤 체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여름 끝자락, 휴가도 못 간 터에 기회가 주어졌다. 템플스테이는 인터넷 예약이 필수이지만 인터넷에서 여러 군데를 검색하여도 이미 너무 늦어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없이 내 휴가 일정에 맞추어 산중 사찰로 다짜고짜 전화를 하고 달랑 세면도구만 챙겨 집을 나섰다. 차도 집에 두고 일단 열차를 탔다. 직접 운전을 하고 길을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피하고 싶었고 또 처음부터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몇 번 환승하고 버스를 갈아타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홀가분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을 나서니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휴가철에 여행도 아니고 이 무슨 청승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차에서 내리니 여름 햇살이 쨍하다. 그러나 덥다기보다가는 깨끗하고 쨍한 하늘이 경쾌하기만 하다.

버스를 갈아타고 사찰입구에 내려 일주문을 들어선 후 약 2km정도를 걷는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져 산길이 무척 시원하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풍부히 흐르고 새소리도 듣기 좋다. 혼자 걷는 길이 외롭지 않다. 어쩌면 홀로 있을 때에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결코 외로움이 아니며 최대의 도전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도 있다. 마치 자신이 구도의 길을 가는 수도자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혼자 웃음을 지어 본다.

사찰에 도착하자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다. 소나기 후 피어오르는 운무가 앞산을 휘감아 운치가 있다. 관리 사무실에서 접수를 하고 수도복과 숙소를 배정 받았다. 수도복은 개량한복과 비슷하며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었으며 숙소 또한 순수한 한옥으로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깨끗이 비질된 마당을 걸어 보려는 순간에 또 한 차례의 소나기가 정말 시원하게 한 줄기 한다. 산사 체험 전에 세속에서의 잡념들을 깨끗이 날려 주려는 듯하다.

옆방에도 체험자들이 여럿 있고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참석여부는 자율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께서 건립하신 유명 화엄사찰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스님과의 일과를 함께하며 중요한 예의(절)는 다 지키기로 한다. 저녁에 스님을 모시고 강원에 둘러앉았다. 예상외로 대부분이 젊은 세대들이다. 일부의 단체 참석자들이 있어서 그러한 것 같다.

각자 자유스럽게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정말 일상에서는 쉽게 나누지 않던 이야기들이다. 모두 심중에는 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구나. 젊은 세대들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도 속이 깊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자유스럽게 나눈 깊은 대화들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새벽 04시에 한 시간 가량의 도량석은 자신을 돌아보기에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예불 후 새벽 참회문에 띠라 108배를 하는데 정말 참회 할 것도 많고 감사할 일도 많으며 발원할 것도 많았다. 참회문은 하나같이 내 자신을 위한 것 같았으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과 함께 가슴 속에 아픔과 눈물이 흐름을 느꼈다.

아침 공양 후 자유시간이다. 방을 뒹굴다가, 책을 몇 장 제키다가 등산을 다녀왔다. 이번 체험에서 아쉬운 점은 산사에 도착하고 보니 스님과 함께 정말 스님같이 산중 생활을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자유스럽게 운영되는 것이 기대와는 달랐다는 점이다. 스님같이 지낸다는 것은 일부 젊은 사람들에게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틀간의 체험은 짧기는 하였으나 느낀 것은 많다. 일생에서 이렇게 조용히 나만의 시간은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2017.8.24~  산중에서 모바일로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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