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수필 & 긴글

친구들에게 하는 어느 가을 날의 고백

by 탁구씨 2009. 9. 11.

잠시 가까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온 날 저녁,

문득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원을 돌면서 산산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났고 그래서 곱씹어 보던중 이렇게 몇 자 적어 고백을 해 보고자 한다.  물론 반성을 겸해서다.

 

나는 참 오만하게 인생을 시작했던 것 같다.

젊은 혈기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고 세상은 전부 내 것 같았으며 

하지 않을 뿐이지 할려고만 하면 모두 다 내 마음대로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의 계획은 세웠고,

서른하나에는 집을 사고, 둘에는 승용차를 사며, 셋에는 과장이 된다... 뭐 이런 식이다.

80년대 초 당시 나의 상황으로서는 용기라기보다가는 무모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시간차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루어 졌고, 따라서 오만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만의 댓가는 혹독 했다.

마흔 중반을 넘어 설 무렵, 가까이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사업에 대한 제의를 받았고

거의 망설임 없이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사장이 되겠다고 뛰어들었다. 

소심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하는 것, 나도 하면 안될 것이 없다는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 다른 여러가지 현실에 크게 실망했고 드디어 내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때까지는 아직도 오만이 남아 있어서 다른 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었고

틈틈이 내 능력 만으로 소신껏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격시험을 공부했고,

운이 좋아 남보다는 쉽게 그동안의 직장생활에서 하던 일을 병행하여 새로운 창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이미 방황은 시작되었고 인생의 황금시기여야 할 마흔 후반이 한 없는 좌절과 고통으로 얼룩 졌다.

소리 없이 무너지는 가슴과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혼자만의 고통에 시달렸다.

주위에서는 속 모르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많았고, 그때마다 그것들은 못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그 와중에 아주 가까이 지내던 사람으로부터의 어처구니없는 배신이 있었고 이는 그 사실 보다가는

인간적 헤이 감 등 내 인생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대인 공포증에 시달리게도 했다.

 

적지 않은 시간 몇 년을 무지하게 고뇌하고 노력하면서도 허비하게 되고..

결과로 깨지고, 닳고, 다듬어지고,.. 그리고 포기하게 되고,

그리하여 조금씩 조금씩 낮추어지고,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 조금은 겸손을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욕심이 자신을 해치고 용서가 최선의 승리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여야 하며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가장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다시 조용한 안정이 찾아온 것이다.

 

이제는 매사에 감사한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이 세상 모든 것에..

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쩌면 과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절대자가 나에게 준 선물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2009. 9. 11일 동기회 카페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