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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어린시절3

내 어렸을 적에 내 어렸을 적에 안경 쓴 교감 선생님이 있었지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밝은 햇살이 운동장을 비추고 교실 앞 화단은 봉숭아 다알리아 맨드라미 백일홍이 피고 하얀 고요가 있었지 하얀 웃음이 있었지 분주한 꿀벌이 있었지 오솔길도 있었지 너희들 오래오래 친구 하는 거야 교감 선생님은 하모니카를 불고 우리는 붉게 타는 홍초를 보았지 뚝딱거리는 시계 소리를 들었지 투명한 눈과 귀와 가슴이 있었지 교감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켜고 우리는 둥둥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았지 무지개를 보았지 토끼가 되었다가 큰 바위 얼굴⁽¹⁾이 되었다가 구름 너머에서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 교감 선생님은 아코디언을 켜고 교실 앞 전나무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지 하늘은 주황색으로 붉게 물들었지 우리들의 꿈도 둥둥 여물어 갔지 ⁽¹⁾ .. 2022. 7. 20.
아버지 아버지 산모랭이 돌아서 오리쯤에 아버지는 논에서 피를 뽑고 나는 천방에서 방아깨비를 잡아 방앗간을 차렸다 방아깨비가 방아를 찧는다 한 마리 두마리 셋 넷 쌀 보리쌀 서 말가옷은 찧고 촐뱅이를 잡고 메떼기도 잡고 그것도 시들해질 때쯤이면 산그늘이 논 중간을 지난다 풀을 뜯던 소가 앞서고 나는 소타래를 쥐고 아버지는 꼴지게를 지고 집으로 향한다 소는 눈을 껌뻑거리며 입을 우물우물 씹으며 꼬리로 모기를 쫓으며 스스로 집을 찾아 제 마구간까지 들어간다 긴 하루 모깃불 피어오르고 멍석 위 아버지 곁에서 꿈속에 든다 파란하늘 은하수가 하얗게 흐른다 2021. 6. 27.
보랏빛 꽃 보랏빛 꽃 별도 저무는 여명 보랏빛에 쌓여 신비스러움을 생소하지 않게 다가와 가깝지 않으면서도 창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체 익숙한 미소를 보이는 빛 반갑다는 인사도 없이 바라보다가 별이 내리기 전 홀연히 사라지는 신비 익숙하지만 먼 거리 대화를 해보지도 손을 잡아보지도 않았지만 길고 긴 강을 함께 흐른 영혼의 빛 절로 뜨는 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손을 뻗쳐도 닫지 않고 불러도 대답 없는 가슴에 아린 점 하나만을 남기는 공허 아쉬움을 놓고 가는 처음부터 별이 되어야 할 야속한 빛 이제는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때 영원한 별이 되어버린 그를 위하여 보랏빛 와인을 높이 들어야 하는 때 그 어디에서 영원히 빛나기를 내 사랑하던 그대 보랏빛 꽃이여 2020.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