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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시간3

긴 침묵에서 깨어나 긴 침묵에서 깨어나 서랍 속 오래된 손목시계의 태엽을 감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착착착 소리를 내며 바늘이 돌아간다. 이 시계는 수년 동안 서랍 속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잠시 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듯 태연히 일을 시작한다. 마치 낮잠을 한숨 자고 난 후 그동안에 마른 빨래를 앞으로 당겨 하나하나 가지런히 개고 있는 중년 여인네 같다. 이 시계는 그동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꽃피고 비 오고 단풍 들고 눈 내리는 수많은 시간의 반복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태엽이 오랜 시간, 수 십 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한 번에 연결시켜 주어 버렸다. 어느 봄날 떨리는 손으로 나의 손목에 채워주던 아내는 어느덧 중년을 지나 머리에 은빛이 검은 빛보다 많고 나의 성긴 머리카락 속으로는 바람이 술술 지.. 2021. 1. 27.
내가 알지 못하는 계획 내가 알지 못하는 계획 동쪽 창에서 여명을 느끼는 것도 아침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는 것도 살짝 풍기는 꽃 냄새를 맡는 것도 창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에 시린 공기를 마시는 것도 버스를 기다리다가 전철로 바꿔 타는 것도 책상에 앉아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도 오후 간식으로 과자 하나를 반으로 쪼개어 따뜻한 홍차와 마시는 것도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것도 빌딩의 불들이 꺼지고 가로등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빌딩 사이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신비일 수도 있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계획이 있는 거지 2021. 1. 25.
노루 발자국 노루 발자국 산 너머 가는 오솔길 네가 바람과 별과 함께 다니고 들풀이 슬쩍 길을 터 줬지 토끼와 다람쥐 놀고 구름과 달과 새들도 넘나들던 산 따라 난 꼬불꼬불한 길 이제 네가 다니지 않으니 산비탈에 납작 붙어 있던 그 길도 죽어 허공이 되었네 2020.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