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시 & 짧은글

전투일기 /내 어릴 적

by 탁구씨 2022. 7. 23.

사진-청와대 춘추관 앞 광장에서

 

 

전투일기 /내 어릴 적

 

 

19xx년 7월 23일 일기 쾌청

화학무기를 긴 장대 끝에 묶었다

전투 준비는 끝났다

바짝 엎드려 적진에 다다랐다

선두는 드디어 심지에 불을 댕겼다

싸한 냄새가 요동을 치고

불똥이 적진의 성문 앞에 떨어졌다

 

순간

몰려나오는 수천의 적군들

우리는

퇴각 명령도 없이 혼비백산했다

몇은 논둑 아래 콩밭에 얼굴을 처박고

몇은 죽을힘을 다해 줄행랑을 놓았다

선두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몇 시진이 흘렀다

아군의 피해는 처참했다

얼굴이 퉁퉁 부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녀석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녀석

어느새 된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칫솔대 타는 냄새에 적병이 마비되어

아무 염려 없다는 정보는

어림없는 것이었다

 

이튼 날 다시 진용을 갖추었다

적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새로운 각오로 장비도 점검했다

바가지로 투구를 쓰고 눈만 남기고 둘둘 감았다

선두는 곡괭이를 챙기고 삽도 챙겼다

전리품을 획득하겠다는 달콤한

의욕으로 사기는 충천했다

 

우리는 적의 진영을 향해

재빠르게 낮은 포복으로 접근했다

선두는 다짜고짜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삽을 잡은 병사는 소리만 질렀다

적군이 수 없이 밀려왔다

아랑곳하지 않고 적의 진영을 부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적 진영의 곳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성벽만이 버석거렸다

때를 잘 맞추지 못하였다

동네 큰 밤나무 밑 땅벌의

꿀 탈취 전쟁은 상처만 남았다

내년에 때를 맞추어 다시 하자

선두의 애쓴 변명이다

 

청와대 옛 헬기장에서

'시 &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마당  (4) 2022.07.28
액자  (7) 2022.07.25
내 어렸을 적에  (27) 2022.07.20
산딸기 익는 계절  (34) 2022.07.17
5호선 검단산행  (7) 2022.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