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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짧은글

복숭아 서리

by 탁구씨 2021. 7. 8.

 

복숭아 서리

 

작전회의는 신중했다

전부 윗옷을 벗고 셔츠는 끝을 묶는다

맨살이라야 눈에 덜 띄고 잡혀도 미끄러워

도망하기 좋고 묶은 셔츠는 자루로 쓴다

암호는 부엉이 소리이다

암호가 울리면 무조건 달리되 곧장 마을로

가지 말고 동구 밖 바위로 모인다

어느 동네 사람들인지 몰라야 한다

 

드디어 원정에 나섰다

모두 윗옷을 벌거벗고 비장한 각오이다

출발부터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체 현장에 도착했다

모두 자세를 낮추고 동정을 살폈다

나는 경계를 담당하여 멀리 길목에서 망을 본다

달빛이 교교하고 주위는 흔적도 없이 조용하다

긴장감이 흐른다

 

순식간에 나무 밑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막 나무에 매달리는 그 순간이었다

원두막 부근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부-엉’을 외쳤다

모두 순간적으로 튀기 시작했다

나도 달렸다

저 멀리 누군가가 혼신을 다해 쫓아온다

나는 논둑으로 풀숲으로 산으로 마구 달렸다

어디선가 따라오던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

뒷산 나무 뒤에 숨어서야 겨우 한 숨을 돌렸다

 

가슴이 조금 진정되어 살그머니 약속한 바위로 갔다

모두 헐떡이며 모여 있었다

내가 꼴찌였다

그들은 내가 잡힌 줄 알았단다

안심이 되는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전부들 주인이 자신을 쫓아왔고 용케 따돌렸다고 한다

 

한참 후 누군가가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런데 진짜 주인인지 확인을 한 거야?

글쎄?

모두 확실히 누군가 쫓아오기는 했단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원두막 부근에서 복숭아를 따려다가 오줌을

먼저 누었고 다른 친구가 뛰기에 뛰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본 움직임이 이 친구!

아하!

 

그러면 전부들 서로를 주인으로 착각하고 뛴 것이 된다

에잇! 자식

복숭아나 먹자

그 와중에도 딴 복숭아를 버리지 않고 가져온 녀석이 있었다

맛은 좋았다

한 번 더 제대로 하자

그래 그래

나는 대답은 했지만 다시는 못할 것 같다

가슴은 방망이질하고 온몸은 풀에 스쳐 따갑고 아프다

 

(1970-80년대 여름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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