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등 산

소설속의 남한산성

by 탁구씨 2009. 6. 16.

   六월 첫주, 정말 신록이 무성한 계절입니다.

  마천동 버스종점에서 내려 남한산(청량산)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우측으로 난 좁은 등산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등산로라기 보다가는 산책로에 가까웠지만 풀향기가 한없이 싱그러웠고

  중간 중간에는 이제 산딸기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2주정도만 더 기다려 왔으면 산딸기를 실컷 맛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은 그 길로 오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말입니다.

  여하튼 도회 근처인데도 유달리 산딸기 덩쿨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천동 산 초입에서 우측으로 계속 게걸음으로 오르면 아마도 남문에 도착하지 않을까? 추측

 했었는데 역시 맞아 떨어져 남문앞으로 나왔습니다. 성곽을 덮은 담쟁이 덩쿨과 남문 누각이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남문 바로 앞에 오래된 고사목이

 그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몇년전만 하여도 차도가 바로 앞으로 우회하여 조금은 방치된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잘 정비하여 보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문으로 나오기전 마른 이끼가 낀 산성위로 담쟁이 덩쿨이 이제 막 연록을 벗으며 두텁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읽은 소설  '남한산성' (김훈 作 이었던가?)이 생각 납니다. 이 소설에서 보면 남한산성이

 조금은 비통하고 처절하게 그려져 있었던것 같습니다. 종묘와 백성을 뒤로한채 강화도로

 피난길에 올랐던 치욕스런 임금(인조?)의 어가가 오랑캐에 길이 막혀, 부득이 이 협소한

 남한산성으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임금은 한없는 좌절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으며 중신 또한 일개

 미약한 백성에 지나지 못했습니다. 

  병사랄것도 없는 무지렁이 노복으로 급조된 소수의 병사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그 표현이 처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문득 성곽 넘어로 그 모습들이 떠오르고 약간 낮은 부위나

구멍이 있었음직한 곳에는 그때 그백성 그신하들이 몰래 성곽을 빠져나오던 그 흔적으로 상상되었습니다.

결국 임금은 산성을 나와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 백성이 될것을 약속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고 못난 우리의 처지였지요. 지금은 얼마나 달라 졌을까? 가끔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조금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상황론적인 것이며, 외세의 입김에 꺼질듯이 흔들리는

촛불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북에서 핵 실험을 하고 으름장을 놓는데 정작 제3국이 모여앉아 있고

우리는 문밖에서 끼리만 떠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울하고, 성곽을 낀 정감어린 오솔길이 있으며, 행궁터가

 있고, 유물관이 있으며, 사찰이 있고 거기다가 기독교계통의 시설도 많은 곳이지만, 왠지 당당하고

 자랑스런 느낌보다가는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때도 있고, 유쾌하지만은 않을 듯한 선입관을 가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냥 유적으로서의 가치, 자연으로서의 가치만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등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한라산 등산  (0) 2009.08.21
맨발로 걷는 우이령길  (0) 2009.07.13
사패산-포대능선-망월사  (0) 2009.04.07
사패산 등산  (0) 2009.02.23
겨울의 소구니산  (0) 2008.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