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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일상

탁족(濯足)(8/15)

by 탁구씨 2006. 8. 15.

 

계속되는 염천을 피할길이 없다.

모두들 근래없던 더위라고 한다.

에어컨을 높혀도 보고 선풍기를 두대나 더 돌려도 보지만

몇년만에 겪는다는 한낮의 더위를 감당하기란 어렵다.

아예 에어컨은 가족들에게 양보하고 

선풍기 하나를 달랑들고 방으로 들어가 최대한 편한자세로

가장 부담 없을것 같은 책한권을 찾았다.

 

그러나 수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진다.

오수는 꿀맛이지만 경험상 이런 더위에는 자고나면 오히려 머리만 멍하다.

도저히 않되겠다. 가까운 계곡으로 나가 발이나 담그고

그야말로 탁족이나 하며 소설책이나 읽어야 겠다.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한낮,

반바지에 밀집모자를 쓰고 돗자리와 얼린 물한병,

읽던 책한권을 들고 가까운 산 계곡으로 갔다.

 

그러나 계곡은 장마가 지난지 며칠 되지도 않은것 같은데

도회 가운데 산이라 골이 얕아서인지 물은 겨우 실낱같이 흐른다.

다행히 휴가철이어서 곳곳에 설치해 놓은 벤치와 마루는 빈곳이 많다.

평상을 하나 차지하고 등을 깔고 누우니 키높은 나무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른다.

매미소리도 있고 풀벌레 소리도 들린다.

각양 각색으로 울어대는 소리들이 화음을 이룬다.

 

처음엔 바람도 없고 숲속 습한 기운이 올라와

무덥기가 오히려 집 보다도 더한것 같더니,

한참 조용히 누워 하늘의 구름을 보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인내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산들 바람이 느껴지고

더위가 가시는 듯도 하다.

도회 가운데 이런 산이 있다는것이 얼마나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주위엔 숲을 산책하는 사람, 나란히 앉아 가볍게 담소하는 사람,

벤치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 책을 보다가 얼굴에 덮고 오수를 즐기는 사람.

아무 표정없이 사색을 하는 사람, 가볍게 운동을 하는사람.

어떤 사람은 아예 런닝차림으로 마루에 누워 제대로 잠을 자는 사람.

참으로 한가로운 시간들이다.

 

오늘 책에서 본 이태백의 한시 한귀절을 인용 기록해 본다.

問君何事捿碧山 (문군하사서벽산)

  ' 당신은 무슨일로 청산에 사는가? '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 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다. '

 

 

 

문득 아침에 성당에서 떠올랐던 기도가 생각나 부끄러워 진다.

  " 님! 피할수 없이 주어지는 난관이라면 달게 받게 하소서.

   그러나 그 기간과 고통은 가능한 줄여 주시고 덜어 주소서."

                                                                     

                                                                     (200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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