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한 배반
아침에 스카이 장비가
통행로를 막고 있더니
은행나무 가지를 싹둑 잘랐다
입대 청년의 머리카락을 자르듯이
짧게도 잘라 버렸다
이제 곧 가을이 오면
노란 열매들이 알알이 익어갈 텐데
떨어질 은행 알이
냄새가 고약하다고
떨어질 낙엽이 청소하기 힘들다고
어느 날엔 건강에 좋다고
다투어 줍고는 하더니
차량 매연에 혼탁한 도회 대기로
중금속이 함유되었다는 이야기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더니
이제 곧 가을이 오면
노랗게 천지를 물들일 텐데
가을비 내리면 양탄자들이 깔릴 텐데
모두가 나와 사진을 찍고
가을을 간직할 텐데
가을바람에
짤랑짤랑 금화 소리 낼 텐데
무성한 나뭇가지에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날
은행나무 가지들이
싹둑 이발을 해 버렸다
올해는 금화소리도
양탄자도
뒷축 미끄러지는 낭만도
없으려나 보다
(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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