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서러운 것들
딱딱딱, 딱따구리가 숲속의 고요를 깬다
제집을 지어 훗날 살아있다는 것에 물려준다
좁은 골목길을 폐지 탑이 흔들흔들 굴러간다
매달려 가는 바싹 여윈 다리에 빵빵대지 마라
건물 모퉁이 동전 몇 닢 든 바구니,
보내는 간절한 눈빛을 애써 피해 가지 마라
개미들이 제 몸보다 큰 먹이에 매달려 힘겹게
당기고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코끼리 발로
그들을 방해하지 마라
그들은 혼신을 다하고 있는 거다
한 마리의 사슴도 한 마리의 사자도 그러하다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탓하지 마라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다
세상 어떤 것도 방해할 수는 없다
가로수 꼭대기에 달린 까치집 건드리지 마라
그 집은 유연하여 비바람에 순응한다
저항하지 않는다
까치집보다 못한 인간의 집을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에 떨어진 러시아 포탄에
학교는 무너지고 어린 생명들이 피를 흘린다
이스라엘 포탄이 인질 몇 명을 구하려고
팔레스타인 병원 환자 수백 명을 학살한다
그 시간 우리는 꽃집 앞에서 꽃을 고른다
창가에 놓을 아름다운 제라늄을 산다
봄의 산천은 온통 연두색으로 묻어난다
두껍고 강건한 소나무도 슬프다
유월 힘센 햇볕에 텃밭 푸성귀도 슬프다
세상을 조소하는 것들 나를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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