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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짧은글

몇 살까지 일 할 수 있을까

by 탁구씨 2022. 11. 16.


몇 살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별 빛이 차갑게 푸르고
플라타너스 잎이 바스락 거리는 날
중년을 넘어가는 동갑내기가
강가 버스 선술집에 동승하여
소주잔으로 투합했다

외환위기가 막 지나가고 있는 때

우리가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
막 자영업에 뛰어들어 섬유업을 하는 P대표는
자조 섞인 말로 어렵겠지만
몇 년 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수기업에 다니는 K과장은
하루가 살얼음판이라 운신이 겁난다고 했다
대기업이긴 하지만 경기에 직격탄을 맞을
T과장은 아무런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홍합 국물은 뜨끈하지만
어둠 속으로 강은 적막하게 흐르고
소주는 쓰기만 하다
시대의 고뇌만이 공간을 꽉 채우고
그들은 오육년 더 할 수 있다는 것도
희망적인 기대라고 했다

강가의 인적도 점차 잦아들고
그들만이 남아 낡은 버스를 지킨다
그들은 쉽게 일어설 수가 없다
늦은 밤 웬 이른 눈이 이리도 퍼붓고 있는가

멀고 긴 강이 흘러
다시 플라타너스 마른 잎이 날리는 때
그들은 희끗한 머리를 넘기며 먼 강을 보고 있다
다행히 세상은 외면하지 않았고
공정했으므로
강물은 여전히 잔잔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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