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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짧은글

나목(裸木)

by 탁구씨 2020. 12. 17.

 

나목(裸木)

 

산비탈 언덕에 의연히 서서

상념은 시원히 날려버리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바람 불면 가슴으로 받아 순순히 휘고 일어선다

푸른 하늘에 편안히 어깨를 내어주고

어떤 간섭도 거부하지 않는, 그 모습

참으로 초연하다

 

하늘을 향해 가는 팔을 흔들며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무소유를 산다

찾아드는 작은 새들에게 가슴을 내어주고

동네 가운데 서서 소소한 이야기를 빙그레 들어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방해하지도 않는다

세상 어떤 소리도 마음껏 들어주는, 그 마음

참으로 넉넉하다

 

무성했던 여름을 회상하거나

움트던 봄을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발바닥 따스해지고 팔다리 수액 오르면

그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이 온다

세상사를 거스르는 일이 없는, 그 삶이

참으로 당당하다

바로 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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