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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이즘에 생각나는 신부님

by 탁구씨 2008. 1. 26.

 

 

 

이즘이면 문득 생각나는 신부님이 계신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정신없이 일이 바쁜 때였다.
신부님이 정기 인사로 이임하신다는 소문을 들었고, 마침 그날이 이임식이 있는 날이었다.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작별합니다."
주임 신부님은 새로운 임지로 떠나시기 전 마지막 교중미사를 집전하시며 작별의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짐에 섭섭함이 인지상정이라고 했던가?
새로 부임하여서 서먹서먹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신부님이 오실 그 무렵, 전임 신부님때 성당에서 하던 알량한(?) 봉사를 그 기회에 빠지자고 내빼다가
결국은 잡혀 주변에서 쉬운 일만 하며 어정 되기만 하였는데 막상 떠난다니 아쉬움이 컸었다.

신앙차원이 아니라 대단히 인간적인 분이셨다.
매사가 공평하고 무엇보다도 우직하게 시골스럽고 부지런한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셨다.
도회 복판의 이기적인 아파트단지 가운데 자리한 성당으로 많은 제약이 있고,
특히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많은 교우들을 사목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던 분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미사집전은 물론 운영전반을 직접 챙기셨고,
특히 피정이나 성지순례 때는 먼 밤길을 마다않고 현장에 들려 독려하고 밤을 새워 귀가하여.
다음날 미사를 집전하는 등의 모습은 열정이 흘러넘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한, 어린 학생들과 함께하는 운동, 등산, 수련회 등은 보통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벽이면 복사단들을 불러내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고.
여름이면 청년부들과 함께 강원도 골짜기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그 까다로운 아파트 단지 엄마들의 극성을 아랑곳 하지 않고서....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며 책상앞 교육보다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에는 나도 적극 찬동을 했다.

강원도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분이라 부임하면서 아파트 복판에 어린이들 정서을 위해
닭, 토끼, 개 등을 기르다가 주민들의 소음 항의를 받던 일 등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 동물들을 기를때 사육장을 만들고,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하고, 모든 일을 거의 직접 하셨으며
성당청소 조경 등을 할 때도 농부 같은 분이었고
연세 많으신 분들에 대한 절대적 공경은 정말 인간적이었다.

그날 이임 인사를 할 때 신부님은 눈물을 보이셨고 많은 교우들도 따라 우는 것을 보았다.
그 모든 것이 그 신부님의 인간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하길 바랍니다!"로 이임사를 끝냈다.
그리고 차를 타시기 전 나에게 오셔서 'jb씨 잘 지내시오' 하고 악수를 하신 다음 떠났다.
사목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다던가?
그 후로는 별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제주도 어느 본당으로 가셨고 주일 미사 인원이 수십 명 정도라는 이야기와 

서울 본당에서 부터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분은 오늘도 해안가 어린 꼬마들과 열심히 뛰고 있고,
어쩌면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 하지 못한 개와 닭 오리 등을 마음껏 기르고 있으시며
동네 할머니들에게는 아들이 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문득 눈 내린 산길을 등산 하다가 우연히 그 생각이 났다.
'신부님! 건강하십시요.
그리고 끝까지 그때의 인간적이고도 아름다운 목자 상을 유지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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