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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한없이 한가한 오후(5/19)

by 탁구씨 2005. 5. 26.

한없이 한가한 오후다. 몇 년 전 어떤 책에선가 본 '세상도 졸고 닭도 졸고 모든 것이 졸고 있는 듯 한 고요한 적막' 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난 오늘이 휴무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은행일 등 미처 보지 못했던 일들을 오전에 마치고 혼자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느긋하게 한숨 잤다.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동기회 카페에 들어 왔고 마침 컴퓨터 앞 창밖으로 졸고 있는 듯한 아파트 마당이 보여 이 자리에서 한 컷 찍어 올려본다.

오늘이 왜 이렇게 한가하냐하면 내 사무실 사정상 우연찮게 주중휴무를 하게 되었고 집에는 애들은 전부 학교를 갔고 아내도 마침 교육인가 뭔가를 갔다.

돌이켜 보면 정말 이제 까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 나만의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딱히 그 시간이 1974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까지 26년 정도이다.

1974년 늦은 가을 고교졸업도 하기 전 직장에 입사했고, 그리고 또 그 후에는 야간에 학교를 다닌답시고 바빴으며 졸업 후 늦게 군대를 가게 되어 군에 입대 전날까지 근무를 했다.

그리고 군 제대를 앞두고 다른 직장에 시험을 봤고 우연찮게 첫 출근일이 군 제대 20일 전 이었다.

난 부랴부랴 제대휴가를 받아 근무를 시작했으며 휴가가 끝나자 인사부에 사정사정하여 다시 귀대하여 나머지 일자를 며칠 복무한 후 제대하고 그길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지방근무, 해외근무, 현장근무, 시대가 시대인지라 거의 말단사원으로서 내 시간이란 거의 없는 세월이었다. 조금 선임이 되었을 때에는 욕심이 생겨 직장을 옮기게 되었으며 직장은 옮겼으나 전 직장에서의 할 일이 남아 낮에는 옮긴 직장에서 저녁에는 전 직장에서 근무를 2개월인가를 했다.(물론 월급은 두 곳에서)

그리고 또 웬 욕심, 독립을 결정하게 되었고 그로부터는 더 분주한 순간들이었다.(2002.6월~)

쉬는 날도 있었지만 결코 쉬는 것이 아니었으며 언제나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시간이 생겨도 난 조바심이 난다. 뭔가 할일을 못한 것 같고 해야 될 일이 있는데 안 하고 있는 듯 한 쫓김을 느끼게 된다.

사실 최근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기대와는 달리 만만치 못하여 간혹 본의 아니게 한가한 시간들도 있지만 그 시간들이 내게는 어쩌면 더 힘든 시간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 했다. 어쩌면 포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자신만을 닦달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함께하는 것이고 함께 한다는 것은 흐름에 맡기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오늘도 우연히 며칠간의 여유가 생겼다. 물론 문득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조바심도 날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여유를 즐겨볼 생각을 하고 있다.

쉬는 일주일 중 오늘이 첫날, 오늘은 이렇게 보내고 내일은 휴무지만 사무실에 잠시 나가 정리를 좀 한 다음 친구나 한두 명 만나보고 그 다음 날은 주말이니 주말 스케줄을 따르면 될 터이고 그 다음 날부터 4일간은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

그러나 이젠 너무 계획을 세워가며 사는 것에서는 조금 탈피하고자 한다.

계획이란 준비한다는 측면은 좋지만 자신을 너무 가두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만 쓰자(2005.5.19.오후3시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