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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성모님과 길상사 관음상

by 탁구씨 2023. 7. 25.

성모님과 길상사 관음상
 

얼마 전 우연히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교수님의 작품을 접할 일이 많이있었다. 최 교수 작품은 가냘프면서도 편안하고 뭔가 생략된 듯하면서도 빠진 것이 없다. 어떤 때는 약간 익살스럽기도 또 무표정하기도 하지만 다시 보면 깊은 순수와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재질이 차가운 대리석이나 청동이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다. 조각에 문외한인 내가 감히 평할 수는 없고 무식한 나만의 느낌이다. 나는 생략된 듯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이 좋아 우리 집의 성모님도 최 교수 작품이다.
 
전철 한성대입구역에서 북한산 방면으로 나서면 뿌리 깊은 마을 성북동이다. 마을 초입은 평범한 상가들이 어수선한 지역이지만 곳곳에 유서 깊은 문화 유적지들이 숨어 있다. 간송미술관, 운우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고 한용운, 오세창, 조지훈, 김기창, 김환기, 윤이상 등 수많은 근대의 독립운동가와 문화 예술인들의 집터가 있으며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들이 즐비하여 동네 자체가 정감이 가는 하나의 문화 유적지이다.
 
우측으로 유적지 선잠단지가 있는 곳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성북동성당이 있다. 성당 마당에 계신 성모님은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을 우리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혹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미소 지으며 들어 주실 것 같은 우리의 누님 같이 친근한 분이시다. 성북동은 절과 수도원 같은 시설도 또한 많다. 이를지나 재외 대사관저들이 있는 북한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길상사가 나타난다.
 
길상사를 말하면 법정스님, 관세음보살상, 대원각이 동시에 연상되어 진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은 가톨릭 신자이면서 가톨릭의 성모님상을 많이 조각해온 최 교수의 작품이다. 천주교 신자인 최 교수가 불상인 관세음보살상을 조각했다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스승이랄 수 있는 법정스님의 사고와 안목이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

하기야 종교 태생의 정신적 뿌리는 같은 맥락이랄 수 있고, 불교의 관세음보살이나 천주교의 성모님이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는 측면에서는 그 모습이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 교수의 조각으로만 본다면 역시 묵묵하면서도 친근감이 도는 표정에서 중생을 가엽게 생각하고 신자들의 소리를 자상히 들어줄 것 만 같다.  
길상사는 도심 가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답다. 경내가 개인집 정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전각들도 위압적이지 않고 친근감이 있다. 한 편에 있는 석탑도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가느다란 덩 쿨이 담장을 타고 오른다. 원래가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는데 '일 천억이라는 돈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라고 하던 주인 김영한의 백석 시인에 대한 순애보가 있는 곳으로 이 를 법정스님에게 기증하여 상상을 초월하여 사찰이 되었다. 요정과 사찰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만물이 그 정해진 본래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의 거처였다는 진영각을 올라 보았다. 아무것도 남긴 것 없이 정갈하게 되돌아가셨지만 글을 통하여 우리들의 뇌리에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진영각에는 생전에 출판하신 스님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나에게도 스님의 책이 꽤 많다. 스님의 자연 친화적이고 간결한 글이 좋아 보관하고 있지만 스님 뜻대로라면 이도 무소유에 어긋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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