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명종울 재우며 / 오탁번 시인님의 시입니다.
젊은 시절
나를 깨우던 자명종을
이제는 내가 깨운다
아침 약속이 있거나
지방에 내려가는 날이면
아침 여섯 시에
자명종을 맞춰놓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잠이 깨어
뒤늦게 울리는 자명종을 끈다
여행길에서
혼자 호텔에 묵을 때도
늘 모닝콜을 부탁해 놓지만
벨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깨어
모닝콜 취소 버튼을 누른다
이 세상
다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나 홀로 잠이 깬다
오늘도 가볍고 쉬운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울지 말고 잘 자라
자명종아
다 쓴 붓
맑은 물에 헹궈서 붓걸이에 걸듯
붓에서 풀리는
흐려지는 먹물처럼
하루해 저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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