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퇴근하는 길목에는 연중 아름다운 꽃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는 다세대 주택이 있다.
크고 튼실한 감나무도 있어서 어느덧 주위에서는 꽃 있는 집, 감나무 집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 한철을 빼고는
늘 그때 그때에 아름답게 핀 각종 꽃들로 단장을 하는데
종류도 많커니와 그 꽃들의 생장상태가 희뿌연 도회 가운데에서
자란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튼실하고 아름답다.
그렇다고 넓은 화단이 있다거나 온실 등이 있는
그런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진 집이 아니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지에 꽉차도록 답답하게 지은
전형적인 서울의 다세대 주택이다.
이 댁에서는 비좁은 가운데에서도 꽃들을 담장위나
담장 아래에 받침대를 갖추고
그 위에 아름다운 꽃의 화분을 어우러지게 올려 놓아
커다란 화단처럼 보이게 하여
그 곁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과 즐거움을 준다.
어느날 화단을 가꾸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 이었다.
그분은 옥상에서 화분을 정성껏 가꾸고 꽃이 아름답게 피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려다가 화단을 만든다고 한다.
5층의 옥상에서 그것을 일일이 내리고 올리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닐텐데
그냥 그것이 좋아서 하시는 듯 대수롭잖게 대답하고 그 일을 계속 하셨다.
이집에는 꽃 뿐만아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두세그루의 튼실한 감나무가 있는데 이 또한 대단하다.
여름에는 나무가 매우 건강하여 싱그럽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굵고 먹음직 스러운 감이 풍성하게 열린다.
어느 해 인가는 지나다가 감이 보기 좋다고 하였더니
아주 크고 빛깔도 좋은 놈으로 두어개를 따서 맛보라고 주셨는데
아주 흐믓하였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던 것 같다.
올해도 그 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열렸다.
지난 해 보다가는 못한 것도 같지만 이제 잎이지고 나면
유달리 굵고 빛이 좋은 탐스런 감들 만이 남을 것이다.
같은 도회에서 유독 이 집의 꽃과 감이 싱그럽고 탐스러운 것은
당연히 남을 배려하고, 부지런하며, 또 넉넉한 마음을 가진
주인의 마음과 손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집은 요즘 흔히들 말하는 도시농부의 집이다.
그 것도 남을 위하여 도시 농사를 아주 정성스럽게 짓는 집이다.
작물은 주인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그 빈도에 따라 작황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2014.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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