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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바우상상- 내 고향 용바우

by 탁구씨 2009. 1. 7.

내 고향 용바우는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빼어난 명소도 없고 그 흔한 특용 작물도 없으며 심지어 산도 높지 않고

골도 깊지 않으며 당연히 넓은 들도 없다.

그저 야트막한 야산들이 빼꼭히 둘러 쳐진 가운데 몇 호 되지도 않은 조그만

시골집들만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저 그런 전형적인 촌락이다.

그러니 이름만큼이나 순박하고 정겨우며 시골스러운 면은 있다.

이 마을이 원래의 우리 고향은 아니다.

마을이 큰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야트막한 산골에 숨어 있어서 

그냥 보아서는 마을이 있을 성 싶지도 않은 까닭이 연유가 돼서 내 고향이 된 거다. 

수십 년 전, 한국전쟁 무렵, 선친께서 우리의 원 고향인 큰 마을에 사시면서

밤낮으로 피아가 바뀌는 난리를 겪던 중,

우연히 지나며 본 아늑한 마을이 무릉도원 같아서,

어느 봄 날, 보따리 싸서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이 시간이 흘러

내가 태어나고 고향이 되었다. 

물론 선친도 이렇게 오래 자리를 잡게 될 줄은 모르셨을 거다.

그래서 내가 자랄 때는 주로 큰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철들어 세상을 알만한 무렵에는 도회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내가 이야기하는 용바우는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근거지는 되었으되 그리 오래 생활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고향이라는 포근한 생각을 더 갖게 되는 지도 모른다.

논 몇 마지기를 사서, 생판 무연고 이고 그때 말로 잡성만이 사는 이곳에 

그래도 글 줄이라도 읽으신 선친이 들어오실 때는 나름대로 사정과 생각이

있으셨을 테고,

그래서 인지 거의 은둔 하다시피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고

그 결과, 나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시골 생활은 그저 아름다운 추억거리로만 남는다.

마을은 가운데 조그만 실개천을 기준으로 뒤로 야트막한 언덕을 의지한 채

서로 마주 보며 양지 마와 음지 마로 구성되고, 또 조금 떨어져서는 안 마와

어느 집안의 재궁이 있는 재궁 마로 이루어 진다.

우리 집은 양지마을 복판에 조금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도 요즘은 당연히 몇 호 되지 않는다.

내가 자랄 때는 그래도 수십 호에 몇 백 명의 주민이 있었으나

이젠 겨우 몇 집만이 남았고

그것도 한집에 2-3명만이 사니 마을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나마 우리가족들이 수시로 모이는 것이

가끔씩이나마 사람 사는 동네가 되지 않는가 싶다.

우리 가족들은 각종 명절과 생신, 제사, 휴가철등 그래도 상당히 자주 모이는 편이다.

선친의 산소가 있고 큰 형님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우리들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큰형님은 곧곧한 성격이지만 강력한 포용력으로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이다.    

내게 있어서 이곳을 찾는 순간은 참 행복하다.

이곳에서 나는 추억을 더듬을 수가 있고 이는 각박한 도회생활의 내게

청량한 활력소가 된다.

<오늘은..>

아래는 부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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