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5 일상을 떠나고 일상을 떠나고 내 자리를 떠나온 지도 한 달여 지났다. 머뭇거리다가 준비도 못하고 소나기 같이 주어진 시간에 적잖이 당황도 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처음에 무엇을 해야 될지 막막하기만 하던 시간이 점차 차분해짐을 느낀다. 아니러니 하게도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던 때보다 새벽 기상이 빨라지는 날들이 많다. 물론 일이 없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그만큼 할 일을 찾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서히 적응하는 것일까. 늘 시간이 없어 안타깝던 여행도 무계획적이기는 하지만 짧게 나누어 몇 번 다녀왔고 책도 꽤 여러 권 읽었으며 약간의 글도 썼다. 이제 다시는 못 쓸 것 같던 글이 책상에 앉으니 습관적으로 흘러간다. 따지고 보면 그래도 내 생활에서는 글 쓰는 시간이 행복하다. 시간의 흐름이 가.. 2024. 6. 23. 새 교복 새 교복 오늘도 학교로 가는 K형 서른다섯 해 졸업 후 새 학교로, 아침에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오르는데 이 학교는 늘 자율 학습 처음에는 관찰하는 법을 공부하고 점차 인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식물도 많이 공부하여 두릅도 노루궁뎅이도 알지 채취한 것을 가족들이 무척 대견해하고 반겼는데 사실 언제부터는 구석에서 말라가는 것도 안다 K형도 비 오는 날이 좋다 선택은 좁고 생각은 골똘하다 내일은 또 어떤 교복을 입어야 하나 2021. 5. 27. 제 2막 제 2막 누가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지 않으리 묵묵히 흐르는 물에 발을 씻고 돌아서는 모습은 자랑스럽고 아름다울 것 그래서 노을은 저렇게 불타며 환송하리 누구에게 떠오르는 별이 찬란하지 않으리 별을 바라보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작과 설렘이 아름다울 것 그래서 은하수 저렇게 흐르며 환영하리 물드는 노을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며 별빛에 가슴 설렘이 없는 사람은 더 아프고 지독히 외로운 사람일 것이라 돌아서는 하늘 초연히 접어두고 강물 부드럽게 흐르며 풀무 아름답게 움직여야 하리 물불 다 태우고 저절로 흐르게 하여야 하리 2020. 8. 25. 정년(停年) 정년(停年) 하늘이 높은 창에 어린 거린다 게으른 새 긴 울음을 뱉고 날아간 하늘 할 일은 많은데 일 없는 느지막한 달력의 경계 밖에 서 있다 시간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려와 이쯤에 내 팽개치고 태연히 떠났다 때 지난 암소가 헤벌레 시간을 씹고 온통 적막이 팔짱을 끼는 표정 없는 자유이다 달력을 딛고 선 선택 자유의 메모 이제 배우가 아니라, 감독인가 2020. 8. 14. 은퇴(隱退)에 대한 단상(斷想)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퇴(隱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져야 되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얼굴과 말과 행동에서 연륜에 따른 인품이 묻어나고, 다음 세대에게 이런 저런 조언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앞선 .. 2019. 4. 3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