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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긴글

차와 전원과 삶(7/23)

by 탁구씨 2006. 7. 23.

 

어제, 오늘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이 쨍하게 났다.

많은 고통을 남긴 장마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하고

지금 막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창 밖에서 매미소리가 들린다.

원래 매미가 요란한 마을이지만 금년 들어서는 처음인 것 같다.

매미도 그동안 지독한 장마가 힘겨웠을 것이다.

 

오랜만에 매미 소리도 들리고 

습기를 머금기는 했지만 ��도 반갑고

몇 년 전 여름휴가 시 전남 보성 차밭에 들렀을 때

일행이 사준 세작차를 꺼내 한잔 우려 놓고 책상에 앉았다.

주위의 조용함과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 평화로움을 준다.

 

며칠 일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고 지루하고도 위협적인 장마가

무척 우울 했었는데, 

어제 토요일, 한 친구와 교외를 한 바퀴 돌며 푸른 녹음을 깊이 호흡 하였으며

오늘은 일요일로 막 성당에서 경건히 마음을 추스르고 문 밖을 나서니

어제에 이어 연이틀 쨍쨍한 날씨가 습기를 날려주고 있어 마음이 가볍다.

특히 이렇게 창가에 한가로이 앉으니 매미소리와 멀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습기를 머금기는 했지만 풋풋한 녹음냄새와 함께 실려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제 차가 제대로 우러났다.

찻주전자를 높이 들어 가볍게 잔에 따르니 소리가 경쾌하고 아름답다.

풍기는 향기도 좋고,  단지 색상은 조금 오래된 탓인지,

찻잔이 바뀐 탓인지 전 보다는 조금 탁한 듯도 하다.

얼마 전 찻잔이 구색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아내가 잔만 새로 구해 놨는데,

사실 이 차는 처음 선물을 받았을 때

마침 큰놈이 구해온 순백색의 잔에 따르니 그 색상이 참 좋았다.

약간 녹색을 띈 연노랑색의 찻물이 순수 흰색의 잔에 담기니 예술이었다.

난 그때 이 색깔이 좋아 이 차를 자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맛과 향기는 지금도 일품이다. 떨떠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그 맛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제 근교의 어느 전원주택(별장)에 들러 주변 환경에 취해 몇 시간을 보냈다.

장마 끝에 불어오는 바람이 습기를 머금어 후덥지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두막에 앉아 오랜만에 쨍한 햇볕 과 녹음을 바라보니 기분이 한량없었다.

이 전원주택의 주인은 20여 년 전부터 전원생활을 준비하여 이 집을 마련,

가꾸어 왔으며 6년 전부터는 아예 도회생활을 정리하여 들어 왔다고 한다.

표정은 오랜 도회 때가 남아 있어 그리 순해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욕심을 많이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여유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래, 어쩌면 인생이란  한때는 정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매진해 보고

어느 시점에는 모든 것을 접을 수 있는 용기도 지혜도 있어야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미사 중에 문득 어제의 농촌풍경이 스치며 기도를 드리고 싶어 졌다.

 

  ' 임이시여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소서.

나를 위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게 하시고,

그저 제게 이미 주어진 지혜와 육체적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게 하소서.

그러나 삶이 힘겹게는 하지 마시고 보편적인 정도의 삶은 살게 하소서.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삶이 타인의 모범이 되어 말하지 않고도 저절로 선교도 될 수 있게 하소서.'

(200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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