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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olic & Family

향원(香園) 이명숙

by 탁구씨 2019. 9. 15.

  항상 애들 생각, 가족 생각에 걱정 많고, 잔정 많고, 손재주 좋고, 나누어주기 좋아하고, 본인 보다가는 조용히 남부터 배려하고, 화장조차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우리의 어머니 향원(香園) 이명숙!

  나의 아내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직장이다. 나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직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눈에 띄는 여성이었다. 아주 순수하면서도 긴 머리에 갸름한 얼굴의 아름다운 앳된 소녀에 가까운 숙녀였다. 온순한 성격에 말수가 적고 업무에도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흠잡을 수 없는 나의 이상형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숨은 연애를 하게 된다. 우리는 금융기관 창구에서 전표를 넘겨주는 척하며 뒤에 메모를 적어 데이트 신청을 하고는 했다. 지방 도시에서 퇴근 후에 갈 곳도 할 일도 없었지만 우리는 군사 작전하듯이 거의 매일 만나 시내를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알게 된 지 오래지 않아 무척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는 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군 입대를 하게 된다. 그 당시에 군 입대는 미래를 알 수 없는 헤어짐이었지만, 나는 다행하게도 사무실이 있던 도시에 배치를 받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정해진 만남이 된 듯하다. 군 생활 기간 동안 아내는 거의 매주 면회를 왔고 내가 외출이 있을 때에는 시내에서 만났다. 우리의 만남은 당시 그 큰 부대 내에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전역 후 해외 근무를 해보고 싶어 다니던 회사에 복직하지 않고 해외 업무가 많은 회사에 다시 공채 입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이른 결혼을 하게 된다. 그해 말에 큰 놈이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해외근무를 하게 되었다. 해외 근무 중에는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내는 처가에서 큰 놈의 육아를 하게 되었는데 힘들었을 것이다. 귀국 후 사년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고 이리하여 내 사랑하는 네 식구가 형성되었다.

 

  아내는 매우 순종 형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우리의 생활은 거의 나의 주관대로 해온 듯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교육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치마 바람 날리는 방법은 싫어했다. 조용히 뒤에서 보살펴 주고 늘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는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속 썩이지 않고 학교생활을 해주었고 공부도 잘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야단스럽게 학원을 이곳저곳 찾아가며 다니지도 않았고 재수를 하지도 않았지만 서울에서 나름대로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동호회에서 서예를 하고 있었는데 후일 상당한 수준에 올라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나는 이 전시회를 많이 기억한다. 아내의 호 향원(香園)은 그때 지도 스승으로 부터 받았다. 결혼 후에도 수시로 각종 학원을 다니기도 하며 다방면으로 재주가 좋았다. 요리, 제빵 등을 배웠고 이는 아이들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의 생일잔치는 아내가 직접 차린 음식으로 풍성했다. 아내의 재주 중 특히 한지 공예도 상당한 수준급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다.

  아내는 취미도 나와 비슷하다. 여행을 좋아하고 등산을 좋아하며 여행의 일환이지만 고택 여행이나 미술관 관람 같은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늘 함께 다녔으며 주위에서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면서부터 집안에 조금 할 일이 생겨 근래에는 제대로 시간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은 거의 평이했던 것 같다. 크게 어려움도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아내는 욕심을 모르는 사람이고, 나의 직장 수입도 우리가 생활하기에는 그리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어쩌면 오늘날의 나는 아내의 영향이 많은 듯하다. 남은 시간도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가고자 한다.(2008.10.02일 자 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