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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산

관악산 천문대, 관악산 등산

by 탁구씨 2012. 3. 1.

정말 오래만이다.

이제까지 산을 멀리하면서 살은 적은 별로 없다. 산은 나에게 있어서 비타민과 같은 것이다. 활력소이기도 하고, 운동의 일부이기도 하며, 신심 재충전의 가장 강력한 특효약이다.

그런데 지난 차가운 계절을 지내오면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동네 산조차도 거의 오르지 못했다. 특히 최근 2-3개월은 날씨 탓도 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심리적인 위축과 직장의 분사(分社), 인사이동 등도 겹쳐 거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오늘이 문득, 3.1절로 휴일이라는 말에 '아! 올해도 벌써 3월이 되었다는 말인가?' 를 중얼거리며 관악산이라도 오르기로 했다.

승용차로 과천으로 가서 과천향교 옆으로 오르는 코스, 오래만에 하는 등산이니 다소 무리가 없는 코스를 택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치더니 곧이어 머리 밑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산중턱, 잠시 멈추고 땀을 훔치니 멀리 가까이 산들의 생동하는 기운이 전해온다.

그래 산은 나에게 있어서 의욕 그 자체이다. 산을 열심히 다닐 때에는 슬럼프를 느껴본 적이 없다. 여유와 자신감이 충만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지도 않으며 한발 한발 산을 오를 때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무의식과 같은 평온이 찾아온다.

오늘은 휴일에다 거의 봄 날씨라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시간여를 오른 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벤치에 앉아 잠시 차가운 물 한잔으로 숨을 가누었다. 오래 만에 여유가 찾아온다.

친구들인 듯 한 맞은편 일행은 막걸리 두병을 내더니 훌훌 흔들어 벌컥벌컥 마시고 손바닥으로 쓱 닦는다. 한 친구가 안주타령을 하자 그것은 괜한 너스레에 불과하다.

다시 등산을 시작하여 채 한 시간이 못되는 시간 연주암 절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참 많다. 많은 사람들이 땀을 닦으며 가쁜 숨을 돌리는 것을 보니 모두 그동안 살아 온 삶의 무게들을 잠시 내려놓고 있는 듯하다.

그래 이 순간은 너도 나도 모두 자유이고 해방이다. 올라 올 때의 힘듦이 언제이냐는 듯 사라졌다.

 

우리도 다시 연주암 넓은 마루, 따뜻한 봄을 품은 햇살이 비추는 마루에 앉아 조그만 빵 몇 조각에 커피 한 잔씩을 마셨다.

따스한 봄이 들판도 아닌 높은 산 사찰 마루에 찾아왔다. 바라보이는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기는 하지만 이미 파릇한 봄 냄새를 풍긴다.

마루에 걸터앉았다가 잠시 눕기도 했다. 허리가 쭉 펴지며 편안하다. 마침 옆에 ‘마루에서 음식을 먹거나 높지 마시요!' 라는 안내 글이 적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누워보는 그 배짱이랄 것도 없는 소심한 스릴, 또한 흐뭇하다.

한 20여분을 머문 후 연주대로 오른다. 연주대 큰 바위에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땀을 훔치고 있다. 연주대 미륵불 방향으로 내려가 보려고 했으나 인파에 밀려 발 디딜 틈이 없어 포기했다. 대신 이를 돌아 나와 맞은편 절벽위의 천문 관측소 홍보실로 들어갔다. 전에는 개방하지 않았었던것 같은데 가끔 궁금하기도 했던 축구공 형태의 시설 속으로 들어가 천문시설을 보고 시설과 기상관측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전에도 있던 시설이었을 텐데 이렇게 개방하고 찾는이에 설명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오픈이란 모든 것을 내려놓는 홀가분한 세상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위터니 페이스 북등 SNS는 이제  밀실이나 접근을 거부하던 그 어떤 권위나 불법적 영역은 존재할 수 없는 바람직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본다.

 

연주봉을 내려 연주암 사찰로 오니 공양 간에 점심 공양을 위한 줄이 길게 서있다. 우리도 그 줄에 합류했고, 된장국 하나에다가, 넓은 그릇에 콩나물 등 나물을 담고 약간의 고추장을 덮은 다음 쌀밥을 한 주걱 퍼주는데, 이를 썩썩비비니 맛이 조금 싱겁기는 하지만 인심 한 번 푸짐하다. 어찌 섭생에 종교가 따로 있으랴! 원래 "절 인심" 이라는 말이 넉넉하다는 뜻인지 빡빡하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절 인심' 한번 후했다. 높은 산을 땀 흘리고 올라 시장 할 그 많은 등산객들에게 넉넉하게 퍼주는 밥 한 그릇이 어찌 ’배품‘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점심을 절 공양 간에서 해결하고 다시 따뜻하고 넓은 절 마루에 걸터앉아 남은 커피한잔을 마저 마시니 나른한 졸음이 덮쳐오고, 잠시 벽에 기대어 눈을 감으니 아! 넘치는 여유와 평화! 정말 내 세상이다. 오늘 등산은 정말 잘 왔다!(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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