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탁구의 / 시 / 수필 / 사진 / 일상 입니다
수필 & 긴글

인생이라 부르는 그 향기(사진, 라울 뒤피 作)

by 탁구씨 2023. 6. 2.

인생이라 부르는 그 향기

 

아카시아 향기가 온통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운 계절이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나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항상 향기가 난다. 꾸미지 않은 부드러운 표정에 엷은 미소로 차분하게 나누는 말씨에서 인품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때에는 막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다. 그래서 깊은 인품의 향기를 더해준다.

사람에게서는 이런 향기가 나야 한다. 결코 인공의 향수 냄새가 아닌 고운 심성을 바탕으로 깊은 지성에서 나오는 인품의 향기 말이다.

향기에는 종류가 있다. 우선 자연에서의 향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에는 숲의 향기를 들 수 있다. 숲속에 들어서면 코끝을 스치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특히 소나무 과의 침엽수림에서 느끼는 진한 피톤치드의 향기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맑게 한다. 또한 이 피톤치드는 살균효과도 있다.

우리 강산 지천에 침엽수림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춘양목으로 유명한 봉화의 홍송 숲길이 으뜸이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솔향기를 맡을 수가 있다.

태백산 깊은 산 속의 수백 년 수령의 홍송 숲을 들어서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두뇌가 맑아지며 점차 코끝을 스치는 솔향기를 느끼게 된다. 덧붙여 홍송에 대한 목재로서의 역사적 쓰임새까지를 새기노라면 더욱 깊은 향기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의 전나무 숲길, 장성의 편백나무 숲, 서울 남산의 소나무 숲, 근교 남한산성의 소나무 숲 등의 군락지가 순간적으로 생각난다.

소나무 숲엘 들어서면 어디선가의 익숙한 내음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한다.

반면 봄날의 라일락 향기도 좋다. 향기가 강하기는 하지만 코끝을 스치며 춤추듯이 날아오는 자줏빛 내음은, 어디인가에 숨겨두었던 잊지 못한 추억 같은 것으로 진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문득 좋은 계절에 좋은 사람들과 테라스에서 호프라도 한잔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계절적인 희망이 솟아나는 것이다. 라일락을 시작으로 아카시아, 장미꽃, 밤꽃 등 본격적으로 꽃과 숲의 향기 향연이 시작된다.

숲은 기지개를 마음껏 켜며 연록에서 초록으로 짙어지고 우리들의 마음도 깊어져 가슴에 푸른 기운이 출렁이게 된다.

여름에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좋다. 항구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강인한 활력을 느끼고, 철석이며 몰려오는 파도에서 힘찬 젊음을 느끼며 많은 추억들을 만든다.

이 시간 어느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던 저녁 시간이 각별하게 생각난다. 바람에 묻어오는 바다 냄새가 달콤하기까지 하였고 파도에 구르는 조약돌 소리, 그 소리도 참 좋았다.

그리고 가을의 낙엽 타는 냄새도 좋다. 마른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노라면 그 구수한 내음이 마치 커피 향 같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안정이 된다. 지나간 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냄새이다.

그러고 보니 추억의 냄새로는 나만의 독특한 내음이 있다. 봄날의 보리 들판에서 날아오는 그 특유의 가벼운 분뇨 냄새이다. 많은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추억과 향수를 느낀다. 어쩌면 푸근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보리밭 부근으로 시오리 초등학교에 다녔다. 언제이던가, 지금으로부터 오래되지 않은 화창한 봄날, 보리밭이 펼쳐지는 들판을 차창을 열고 팔을 뻗치며 달리던 추억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냄새로는 가공의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담배 냄새이다. 한때 담배를 피우기도 했었지만 언제부터인가는 극히 싫어졌다. 가까이에서 피우는 냄새도 싫지만 가로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도 역할 때가 있다.

요즘은 흡연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간사함이 냄새를 맡음에도 있나 보다.

또한 화장품으로서의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향수도 있다. 향수의 기원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천 년 전의 성경에서도 나오고 중국 역사 이야기에도 나온다. 물론 우리 역사적 기록에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향수는 오래전부터 선물로도 많이 쓰인다.

향수 냄새가 지난날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마음이 강해져서인지 후각이 둔해져서인지 나날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강한 향수가 대체로 더 고급이며 비싸다고 하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대체로 냄새에 민감한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다. 이곳에서 맡은 냄새가 저쪽에서 또 맡게 된다. 사람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같은 향수를 쓰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의 간사하고 가공스러움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로션도 냄새가 나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에게서는 향수가 아니라 고유한 인품의 향기가 나야한다.

그리고 그 삶은 향기로워야 한다.

말끔한 모습을 하고는 있으나 말과 행동이 거칠고 앞뒤가 다른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난체하며 마치 자신만이 최고인 양 떠벌리고는 한다. 당연히 삶은 무질서 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는 어색하다. 자리가 편치 못하고 그만 일어서고 싶어진다.

그들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반면에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말과 행동이 소박하고 진실 된 온화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만족할 줄 알고 베풀 줄 알며 포용할 줄 안다.

자신을 사랑하며 매사에 여유가 있고 얼굴에 웃음이 만면하다.

대화는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서로 주고받는 재미가 있다. 오랫동안 대화를 하여도 지루하지 않고 다시 만나고 싶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지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삶은 우아하며 아름답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름다운 삶과 고매한 인품에서 나오는 향기가 있다.

깨끗한 외모에 수반하여 온화한 표정에 깊은 지성이 동반된 사람들, 삶이 아름답고 유쾌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그 깊은 품격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에게서는 인품의 향기가 나야 하고 인생은 향기로워야 한다.

(사진: 라울 뒤피 전시회, 2023. 5. 25, 예술의 전당)

'수필 & 긴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우상상 /김탁기  (10) 2023.07.03
저녁 편지  (5) 2023.06.16
유난히 길었던 하교  (0) 2021.12.01
오대산 산행을 하다(10/21일) / 김탁기  (0) 2021.02.21
긴 침묵에서 깨어나  (0)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