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린의 추억
나뭇가지에 봄이
아른 거리는 날
서울 대공원엘 간다
동물들은
아직 닫힌 문 안에서
겨울을 씹고 있다
목이 길어
생각이 먼저 도착한 기린이
우리를 구경한다
아직 찬바람 속인데 찾아 온
무리들이 많구나
기린의 생각은
우리 쪽으로 기울고
고개를 돌려
길게 목을 빼고 창밖을 본다
문득
동그란 눈동자에 우수가 고이고
초원이 펼쳐진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을 추억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발자국들이 모래 위에 겹친다
막막히 펼쳐지는 초원
동무들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무리지어 달린다
미루나무가 흔들리고
버스가 달리고
신작로에 먼지가 일어난다
그 뒤를 달려 간다
매캐한 연료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사막인지 신작로인지
가늠되지 않는 길 위에서
신작로의 먼지를 기억하고
초원의 먼지를 기억한다
문이 열리고
기린의 무리가 달린다
먼지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도 함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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